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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國志 (인간학)

유비 三 顧 의 禮 를 갖추다.

 

좋은 브레인을 얻으려면 힘은 배중된다.

 

 

 

 

 

건안5년(200).권세를 뒤흔들고 있던 조조를 주살하려는 음모가

 

발각되어 주모자인 동승을 비롯한 일당이 모조리 살해당했다.1

 

년 전에 허도로부터 도망쳐서 서주 태수가된 유비도 사실은 이

 

 

 

계획에 몰래 가담하고 있었다.그것을 안 조조는 " 유비란놈. 그

 

만큼 주의를 주었는데도 음모에 가담하고 있었다니."하고 화를

 

냈다.원소와대립해일촉즉발의 기운이 감돌고 있었지만.조조는

 

 

 

 원소보다 유비를 더 방심할수없다.그놈을 지금 꺽어놓지않으면

 

나중에 귀찮게 된다.고 생각하고.군사를 이끌고 서주와 소패를

 

공격했다.유비는설마 조조가 직접 공격해올리가 없을 것으로방

 

 

 

심하고  있었기 때문에 전군이 완패했다.유비의 두부인은 경호

 

 담당인  관우와함께  체포되었다.유비는 원소를  의지하고 달아

 

 나 버렸으며. 막내동생인 장비는 서주 교외에서 산적이 되었다.

 

 

 

관도의  싸움에서는.유비는 원소측의 별동대가 되어 허도 남쪽

 

으로 돌아가서 게릴라 활동을 하고 있었다.관우가 손님 대우를

 

받으면서 조조의 측근에 있다는 것을 알고.유비는 몰래 관우와

 

 

 

연락하여 마침내 그일행과 재회했다.원소가싸움에 진다음.건안

 

 6년(201)에  유비는 호북의 형주로  옮겨 유표의 식객이 되었다.

 

 

 

 

 

 

 

 

 

계속되는 전란속에서도 형주는 전화를 입지 않고 있었다. 그때문에

 

야망을 품은 수많은 영웅호걸이 형주에서 식객 노릇을 하고 있었다

 

유비주종도 그런 부류였다. 식객들의 선배격에 사마휘(司馬徽)라는

 

 

 

노인이 있었다.수경선생(水鏡先生)이라고 불렸던 이 노인은 여러나

 

 라를 두루 돌아다녀인재에 대해서 밝았다.때마침 유비는 좋은 전략 

 

가를 구하고 있었다. 언월 청룡도를쓰면 천하무쌍인 관우와 1장8척

 

 

 

의 창을 쥐고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괴력의장비.창의 명인 조운(趙

 

雲)등이 있기때문에 무예 그 자체에 있어서는 부족이 없었다.그러므

 

로 국지적인 전투에서는 유비일행은 매우 강했다.그러나 주위의 정

 

 

 

세를 분석하여적확(的確)한 전략이나 작전을 세우는 좋은 참모역이

 

없기때문에 큰전쟁에서는 언제나 졌다.그래서 병법에 통달(通達)하

 

고 천하의 형세와 정확한 정보를 포착해서 탁월한 이론 지도를 해줄

 

 

 

브레인이 필요했던 것이다. " 수경선생은 천하의 형세를 파악하고있

 

는  걸물은 좀처럼 없다. 이지방에서는 복룡(伏龍).봉추(鳳雛)가 그걸

 

물이겠지. " 하고 말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복룡이란 제갈량(諸

 

 

 

葛亮)이고  봉추란 방통(龐統)을 말하는거야." 그후 유비는 제갈량의

 

친구인 서서(徐庶)라는 인물을 만났다.유비는 서서의 견식에 감탄하

 

고 참모로서 고용했다.그러자 서서는 "저같은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게누군가?" 이근처의 융중(隆中)에서 농사를 짓고 있는 제갈량입니다.

 

그 사나이는 쓸만합니다.유비는 수경선생의 말이 생각났다.좋다 데리고 

 

오라. " 아닙니다.부른다고 해서 나올사람이 아닙니다.장군께서 직접 가

 

 

 

 셔서 예(禮)를 다해 초청하지 않으면 벼슬아치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유비는 몸소 융중으로 갔다.그리고 겨우 세번만에 만날수 있었다.

 

이것이 소위 "삼고(三顧)의 예다. 그때유비는 47세.제갈량은 그보다 20세

 

나 젊었다.제갈량  자는공명(孔明)은 원래 는 산동성 낭사군 출신이었다.

 

 

 

제갈은 중국에서는 보기드문 두자 성이며 일족은 대대로 관리를 하고 있

 

었다. 산동연주의 부장관(副長官)을  하고 있던 아버지 제갈규(諸葛珪)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그는 숙부인 제갈현의 아래서 자랐다.숙부가 전

 

 

 

근함에따라 각지를 돌아다녔으며.숙부가 돌아가신 다음에는호북성 양양

 

의서교(西郊)에있는 융중이라는 한촌에서 청경유독(晴耕雨讀)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제갈량은 격식이 높았으며 "세상만 잘 만났다면나는 춘추시

 

 

 

대의 명재상 관중(管仲).전국시대의 명장악의(樂毅)에 필적하는 활약을할

 

수 있다." 고 자부하고 있었다.그러나 주위 사람들로부터는  분수도 모르

 

는 촌놈이라고 멸시당하고 있었다. 다만 친구인 서서와.몇번 만난일이있

 

 

 

는 수경선생만은 그의 탁월한 전략상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유비의 삼

 

고의 예에 감동한 제갈량은 이 분이야말로 내가 평생섬길 값어치있는 주

 

 군이라고 생각했다.그는정치적 포부로서 소위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

 

 

 

 計)를 설명하고 유비에게 새로운 독립 왕국을 만들것을제안했다.그 기우

 

 장대(氣宇壯大)한 주장에 감탄한 유비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즉

 

 각제갈량을 군사로서 초빙하고 두터운 신뢰로써 대우했다.유비가 신참자

 

 

 

 인제갈량을 후하게 대우하는것을 불쾌하게 생각하는 관우와 장비는 불만

 

 을 드러냈다.그러자 유비는 두의제(義弟)를 불러서 잘알아 듣도록 몇번이

 

 고 설득했다.제갈공명과 나는 비유해서 말하자면 물과고기 같은것이다.물

 

 

 

고기는 물이 없으면 살아갈수없다.군웅이 할거하고 있는 이 어려운 세상

 

에 끝까지 이겨 우리들의 이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그런 인재

 

가  필요한 것이다. 제발 이해해  주기 바란다.

 

                                                                                                              

 

 

 

두사람은 겨우 납득하고.그 이후는 불평을 말하지 않게 되었다.흔히 말하는

 

수어지교(水魚之交)의 어원(語源)이 바로 이것이다.유비는다시 봉추라고 불

 

리는 방통자는 사원(士元)도 자기 진영에 참가시키는데 성공했다.현대의 비

 

 

 

지니스사회에서 리쿠르트기관(보충기관)이나 학교의 추천도 있고 우수한 인

 

재를  뽑을 기회가 많으며 반드시 사장 자신이 입사시험에 입회할 필요는없

 

다.그러나 신입사원의 채용은 별도로 하고.이사람은 쓸만하다고 생각하는우

 

 

 

수한 인재를 다른회사에서 스카우트할때.혹은 중도에서 보충할때는 사장 자

 

신이 직접 목표로 하는 상대를만나. 예를 다해서 권유할 정도의 열의가 없으

 

 면 안된다.  왜냐하면  어떤 뉴미디어가 나타나더라도.어떤 첨단기술의 세상

 

 

 

이 되더라도 기업에 있어서는 인재야말로 최대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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