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스님의 생애는 몇 차례의 ' 버리고 떠나기' 로 정리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출가(出家)다.
외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부터 책 읽고 사색하는 것을 좋아했던 스물 두살 청년은
1954년 겨울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날,
어머니에게 중이 되려고 절로 간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어
시골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 온다고 말하고 집을 나서
당대의 큰 스승 이었던 효봉 스님을 은사로 머리를 깎았다.
평소 흠모 했던 등대지기의 꿈을 접고 '진리의 빛' 을 찿아 나선 것이다.
사랑하는 이들과 세속적 욕망을 버리는 대신 그는 진리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었다.
두 번째는
1975년 10월1일 서울 봉은사 다래헌(茶來軒) 에서
전남 순천 조계산 자락 불일암(佛日庵)으로 들어 간 일이다.
글 잘 쓰고 의식있는 40대 초반의 촉망 받는 중진 스님 이었던 그는
"시국 비판이나 하며 글 재주만 부리다가는 중 노릇제대로 못 하겠다" 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을 내던지고 송광사 뒷산에 손수 불일암을 지어 산 속으로 들어갔다.
한 칸 암자에서 혼자 밥 짓고 밭을 매며
17년을 지내면서
'무소유' '산방한담(山房閑談)' '텅빈충만'등 10 여 권의 산문집을 펴냈다.
승속(僧俗)의 명예를 과감히 떨쳐 버린 덕분에
사색의 자유와 자연과의 교감을 얻게된 것이다.
세 번째는
1992년 4월 19일 강원도 산골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오두막으로
다시 거처를 옮긴 일이다.
이런 저런 인연으로 산중 암자에 방문객이 늘어 나고
글 빚도 지게되면서 수행에 지장을 받게되자 더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수상집 "버리고 떠나기"를 쓴 후 이다.
지인들은 물론 몇 안되는 상좌 조차 아직 스님의 거처를 모른다.
스님이 "누군가 내 거처를 알게되면 나는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것" 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큰 스님'으로 불리며 절집의 높은 자리에 앉는 대신
자신만의 수행 공간과 절대 고독의 희열을 얻게 된 것이다.
네 번째는
2003년 12월 21일 한 여신도가 오랜 간청 끝에 스님에게 시주한
서울 성북동 길상사의 창건 6주년 기념 법회에서
회주(會主;절의 원로 스님) 자리를 미련없이 내 놓은 일이다.
주지 한 번 맡지 않았던 스님이 떠밀리다시피 맡았던 자리였다.
하지만 차츰 틀이 잡혀 가자
"수행에는 정년이 없으나 직위에는 반드시 정년이 있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을 주저없이 실천한 것이다.
많은 이가 아쉬워 했지만 스님은 큰 짐을 벗어던진 듯 편안한 모습이었다.
스님은 이날 법회후
"때가 되면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육신을 벗어 버리고 싶다"고 지나치듯 말했다.
법정 스님이라면 능히 그럴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스님은 이후 봄 가을 두 차례만 길상사에서 공식 법회를 열고 있다.
수행의 고비마다 버림으로써 더 큰 자유를 얻은 스님은 올해로 출가 52년을 맞는다.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버리고 떠남으로써 더 큰것을 성취할 수 있는
복된 나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 법정 스님의 좋은 글 ♣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 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에서 -
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 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있는가
모두가 한때일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 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에서 -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 줄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 편지에서 -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있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 소리에서 -
시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 밖에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한다.
홀로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 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 홀로사는 즐거움에서 -
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 한담에서 -
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 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있다.
- 홀로사는 즐거움에서 -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 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 오두막 편지에서 -
나는 누구인가, 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한다.
건성으로 묻지 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
우리가 지금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있는 것이 아니다.
- 봄, 여름. 가울. 겨울에서 -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산에는 꽃이 피네에서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있다.
- 버리고 떠나기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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