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백 과 사 전

인간의 영혼을 적시는 시성(詩聖)의 애강두(哀江頭)

           

 

 

 
       인간의 영혼을 적시는 詩聖의 哀江頭        
*이 시 자체가 詩聖 杜甫인 것이다. 
                                              

哀江頭 -杜甫- 少陵野老呑聲哭 소릉의 늙은이 소리 죽여 울며

春日潛行曲江曲 봄날 곡강가로 가만히 나가니.

江頭宮殿鎖千門 강 언덕의 궁전은 모든 문을 닫고있건만

細柳新蒲爲誰綠 실버들 새싹 돋은 창포는 누굴 위해 푸르른가? 憶昔霓旌下南苑 옛날, 천자의 정기가 남원에 내리면

苑中萬物生顔色 뜰 안의 만물은 생기있게 빛나고

昭陽殿裡第一人 소양전의 趙飛燕 같은 천하 절색 양귀비가

同輦隨君侍君側 함께 수레 타고 천자를 모셨었네.

輦前才人帶弓箭 수레 앞 여관들은 활과 화살을 차고있고

白馬嚼齧黃金勒 백마는 황금 재갈을 물고 있었네.

飜身向天仰射雲 몸을 제쳐 하늘 향해 구름 높이 활을 쏘면

一笑正墜雙飛翼 한 화살에 두 마리 새가 떨어졌었다. 明眸皓齒今何在 맑은 눈 하얀 이 미인은(양귀비) 어디 있는가?

血汚遊魂歸不得 피묻어 떠다니는 영혼 돌아올 줄 모르고.

淸渭東流劍閣深 맑은 위수 동으로 흐르고 검각산은 깊으니

去住彼此無消息 죽고 산 사람 모두 소식조차 없구나.

人生有情淚沾臆 인간의 정이 깃든 눈물 가슴 적시고

江水江花豈終極 강물과 강가의 풀꽃들 어찌 끝이 다하리

黃昏胡騎塵滿城 날 저물어 오랑캐 말들의 흙먼지 성에 가득하고

欲往城南望城北 성, 남쪽으로 가려다가 성, 북쪽 바라본다.

 

이 시는 詩聖의 나이 45세(757년)에 안록산의 난으로 피폐되어있는 장안의 풍경, 曲江의 처량함을 보면서 그 감회를 樂府體로 리얼하게 스케치 한 것이다. 唐詩의 吟風弄月이 아닌 리얼리즘을 대표할 시인들이 그 당시 많았지만 詩聖의 리얼리즘에 비교할 수 없었 던 것은 시의 구성요소에 누구보다 충실했고 苦惱했 던 詩聖의 사상적심도가 너무 깊고 서정적 이었기에 어느 누구도 당신의 리얼리즘,아니 格에도 추종을 불 허하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이 시는 당신의 정신적 고향 杜陵옆 少陵으로 운을 떼어 樂府형식의 長詩로 전개해 나가고있다. 前漢의 皇后 허씨의 묘가 杜陵에 있었기에 그곳을 두릉이라 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조상 묘소 가 그 근방에 있었기에 병칭하여 조상묘를 소릉이 라 하였다. 역사는 말하고있다 따라서 당신은 소릉을 자신의 정신적 고향으로 마음속에 간직하고 스스로 호하여 少陵野老라는 정감 가는 이름을 지었던 것이다. 이 말은 곧 ‘소릉의 촌 늙은이’가 아니겠는가? 이렇게 운을 떼어 당신은, 슬픔이 전시에 깔리는 20 구의 긴 악부체로 전쟁으로 피폐된 당 나라 수도 장 안의 슬픈 풍경을 차례로 정감있고 리얼하게 묘사 했던 것이다. 당신의 이 시구에서처럼 말이다 “人生有情淚沾臆 인간의 정이 깃든 눈물 가슴 적시고

江水江花豈終極 강물과 강가의 풀꽃들 어찌 끝이 다하리“ 詩聖의 또 다른 별칭, 詩史란 말이 여기서 생겨난 것아닌가? 바로 당신은 詩로서 인간의 정이 깃든 눈물 가슴속에 깊이 적시고 고난의 역사를 집필 하셨기 때문이리라. 생각해본다 왜! 당신은 소리 죽여 울며 (呑聲哭) 가만히 강가 로 살며시 나아갔을까(潛行)? 유린된 국토에 주둔해 호시탐탐 노리는 반란군의 눈을 피해서 였을까?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자신보다 더 가엾은 민초들을 바라 볼 수 조차 없어서 소리죽여 울며 가만히 쓸쓸한 강가에 나가봤을 것이다. 오늘을, 물질문명에 만연되어버린,그리고 순서가 뒤바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알 수 없는 세상 을 살아가는 가련한 사람들........ 하루아침에 추락해버린 경제위기로 차거운 바람 부는 길거리로 내몰린 가련한 현세인들, 돈과와의 전쟁에서 패배자가 되어버린 많은 사람들....... 그들을 수수방관자로 바라다 보고있는 있는 자들이 새겨 들어야 할 위대한 명언의 말씀으로 누구든 생각해 볼 名句인 것이다. 附言하면 당신의 명작 중 명작으로 人口에 膾炙된 五言律詩,春望(봄을 바라다 보다)에서 보다 세밀하 게 정감된 어조로 인간의 정감을 묘사했던 것이다. 春望 세 번째 구에서 리얼하게 묘사했듯이............ "시세가 어지러워 슬퍼하나니, 피는 꽃에도 눈물 뿌린다. “感時花천淚"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 하여 그 따스한 가슴을 배워야 할 것이라 생각해본다 좀더 이 名詩를 의미 깊게 감상하기 위해서는 당시, 척박한 땅 夜良이란 곳에 謫居된 李白을 위해서 당신이 지은 '夢李白'네 구를 음미해보면, 보다 명료 하게 당신이 이 시에서 하고 싶어했던 말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이 拙人은 생각해본다.

죽은 이별이라면 목이 메이겠지만 산 이별이라 언제나 슬피 울어 엔다 강남은 독기가 서린 땅인데 쫓겨난 나그네 李白에게 아무런 소식 없구나. 死別已呑聲 生別常側側 江南瘡蠣地 逐客無消息

당 玄宗과 楊貴妃의 망국적인 사랑놀음에 기인된 비극, 안록산의 난으로 국토는 피폐해졌고 백성들은 阿鼻叫 喚의 생지옥에서 헤어날 줄 몰랐다. 한성제의 애첩 趙飛燕, 손바닥안에서 춤을 추었다던, 그 녀의 궁전 昭陽殿, 조비연보다 훨씬더 明眸皓齒한 傾國 之色, 楊貴妃, 그녀를 위해 당명황이 지어준 궁전 南苑 그 모두도 이제는 황량한궁전 그리고 닫혀버렸다. 周易에 나오는 興盡悲來란 명언을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당신은 이렇게 楊貴妃와 唐名皇의 흘러가버렸던 사랑 을 차분히 가라 앉은 목소리로 음영했던 것이다. “도대체가 실버들과 새로나온 창포잎은 누구를 위해 푸르고 푸르른가?“ 나는 알수가 없구나 細柳新蒲爲誰綠 이 의미심장한 杜甫詩聖의 萬古名句의 의미를 이 시 를 감상하는 독자들은 가슴속 숙제로 남겨야 할 것이다. 이 시를 지을 때는 인간 杜甫에게 힘도,권력도가진 것 도 그 아무 것도 없었다. 물론 당신의 일생이 거의 그렇했지마는 말이다. 이때가 반란군의 포로에서 막 탈출했던 바로 그 시기 였고 자신이 누구보다 참혹했던 시기였다. 바로 이때 이 시를 묘사했는데, 오로지 그가 누구보다 도 많이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의 가슴으로 흐르는 연민의 정과 시름(愁)이었다. 하여 당신은 참혹한 자신을 잊어둔채 儒家의 저명한 지식인으로서 백성들의 참혹한 현실을 憐憫으로 바 라다 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리죽여 울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 마음가짐에서 흘러나오는 悲歌를 이 시의 맨 마지막에서 따뜻한 영혼으로 서술하셨던 것이다.

'☆ 백 과 사 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절기로 보는 농사법  (0) 2016.01.06
북두칠성  (0) 2015.12.06
당명황(唐明皇) 이융기(李隆基)  (0) 2015.12.06
육룡이 나르샤  (0) 2015.11.22
할미꽃 이야기 (전래동화)  (0) 2015.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