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육룡(六龍)이 나르샤’는 본디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 실린 구절 중 하나입니다. 용비어천가를 먼저 짧게 살펴보자면, 우리 문학에서 흔히 ‘악장(樂章)’으로 분류하는 장르 중 하나입니다. 조선 시대 때 궁중에서 조선 왕조의 창업을 기리고 왕조가 오래가길 기원하는, 태평성대를 원하는 노래입니다. 용비어천가는 세종 29년에 간행된 조선왕조를 칭송하는 악장인데요.
특히, 왕명에 따라 훈민정음을 처음으로 시험해본 작품입니다. 훈민정음 반포 이전에 훈민정음을 쓸 수 있는지 직접 훈민정음으로 작품을 만들어본 작품으로 중세국어를 연구할 때 도움이 되는 문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정인지, 권제 등이 짓고 성삼문, 박팽년 등이 주를 달았습니다.
조선왕조의 건국을 노래하며 태조의 고조인 목조로부터 시작해서 태종에 이르는 여섯 대에 걸친 사적을 노래로 읊은 노래인데요. 세종이 자신의 아버지인 태종까지의 업적을 정리한 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나르샤'는 외국어로 생각하기 쉬우나 순한글로, 용비어천가 1장의 구절 '해동 육룡이 나르샤 일마다 천복이시나 고성이 동부하시니'에서 따온 것으로 '날다'의 존칭어이다.
(용비어천가의 일부)
위 이미지가 용비어천가입니다. 제1장이고요. 그리고 여기 가장 첫 구절이 오늘 살펴본
‘육룡이 나르샤’입니다.
(육룡이 나르샤)
표시한 부분이 첫 구절인 육룡인 나르샤입니다. 아래 아(∙)가 남아 있던 때라 ‘나르샤’ 부분이 아래 아로 표기되어있습니다. 주로 나라샤로 읽곤 했었던 것 같은데, 드라마 이름은 ‘나르샤’라고 읽더라고요.
짐작하셨다시피 ‘육룡이 나르샤’라는 뜻은 ‘여섯 용이 날다’라는 뜻입니다. 앞서 용비어천가는 태조의 고조 할아버지인 목조부터 시작해서 여섯 대의 사적을 노래했다고 말씀드렸었죠? 그래서 육룡이란 목조부터 태종까지 여섯 대의 조상을 지칭하는 이야기입니다. 태조의 고조부터 태종까지 세면 총 7명이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중간의 정조는 태종의 형입니다. 그래서 여섯 대가 맞지요.
목조, 익조, 도조, 환조, 태조, 태종까지 여섯 대에 이르는 조선 왕조의 인물을 용에 비유했는데요. 당시의 용은 성스러운 동물이었습니다. 이는 용이 비를 다스리는 동물이었기에, 농경 사회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할 수밖에 없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용은 왕을 상징하는 영물이었지만요.
(용은 상서로운 동물이었습니다.)
용비어천가 1장을 해석하면 ‘해동의 여섯 용이 날아 일마다 하늘의 복을 받으니, 고대 왕이 하신 일과 같으시니’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좀 더 의역하자면 ‘우리나라의 여섯 성군이 나타나 하는 일마다 하늘의 복을 받으니, 중국의 옛 성군이 하신 일과 같은 일을 하시니’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용비어천가는 중국의 고사(古事)를 빌려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강조하다 보니 중국의 고대 왕을 언급하며 조선 왕조 역시 하늘의 뜻을 받아 중국의 성왕과 같은 업적을 쌓았다고 해석하는 것이죠.
나르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우선 ‘날다’라는 단어는 조선 시대에도 쓰였습니다. 뜻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날다가 맞고요. 날다라는 말은 품사를 기능에 따라 분류했을 때, 활용할 수 있는 용언(用言)에 속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다라는 말을 ‘날다, 날아, 날아서, 날자’ 등으로 바꿔 쓰고 이걸 활용한다고 합니다. 중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다’라는 말은 다양한 형태로 활용했는데요.
(이런 구성을 띠고 있습니다.)
여기에 높임말이 쓰이며 형태가 복잡해졌습니다. 중세에서 높임말은 기본적으로 선어말어미 ‘-시-‘의 형태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모음 어미 앞에서는 모음 어미를 생략하고 ‘-샤-‘의 형태로 쓰였습니다.
또, 매개모음이 쓰였습니다. 매개모음은 두 형태소의 결합에서 생기는 자음충돌을 피하고자 사이에 들어가는 모음을 뜻합니다. 가령, ‘날-‘이라는 어간에 ‘-서’라는 어미가 붙으면 ‘날서’가 되는데, 발음하기 어려우므로 매개모음인 (아)를 넣어 ‘날- + -(아)서 = 날아서’가 되는 것이죠.
(주체높임 선어말어미의 형태 변화는 여러 학설이 있습니다.)
그리고 중세국어에서는 발음하는 대로 글씨를 쓰는 ‘표음주의’ 원칙이 쓰였습니다. 따라서 받침이 연음될 때는 연음되는 그대로 이어 적었습니다. 현대 국어에서는 ‘날아’라고 쓰였다면, 중세 국어세어는 ‘나라’라고 쓰였다는 이야기죠. 이 세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합쳐지면서 ‘나르샤’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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