死 活을 결정하는 街亭의 수비.
위나라 내부에 호응하는 세력을 만들려던 제갈공명의
작전은 맹달의 죽음으로 좌절 되었다. 그리고 그 제갈
공명을 이겨 위나라를 구한것이 사마중달 이었다.사마
중달은 상용에서 급히떠나 명제(明帝)를 배알한 다음.
독단전행(獨斷專行)을 사과했다. 사마중달을 신뢰하고
있던 명제는 책망하기는커녕 그 신속한 처치를 칭찬하
고 정서도독(征西都督)에 임명 해서 한중까지 진격해온
제갈공명에 대비케 했다. 건흥(建興)6년(228)경.한중에
서 대가하고 있던 재갈공명은 해빙(解氷)을 기다렸다
가 10만 장병을 이끌고 위나라 영내로 침입했다. 한중
에서부터 사마중달의 본진이 있는 장안으로 가려면 야
곡(倻谷)이라는 골짜길을 지나가면 10일미만에 갈수있
었다.일찌기 조조가 한중으로 출정했을때도 이 지름길
을이용했다.그러나 제갈공명은 이 골짜기의 좁은 길을
가지 않고 크게 우회해서 기산(祈山)으로 진출했다.그
것은탄탄한 공도(公道)이긴 했으나 배이상이나 걸리는
거리였다.신중한 제갈공명은 적의복병을두려워하여골
짜기의 지름길을 피하고 굳이 먼 길을 택했던 것이다.
기산을 지나 천수(天水)를건너 가정(街亭)이라는 요충
을 점령한 제갈공명은 이곳에 병참 기지를 두었다.가
정은 이 지방의 물자 집산지로서 교통터미널 이기도
했다. 가정에서 동진(東進)하여 드디어 장안을 목표로
하려 했을때.제갈공명은 사마중달의 바위군이 서진해
오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사마중달은 작전에 능
한 사나이다.반드시 별동대로 아군의병참기지인 이가
정을 공격할 것이 틀림 없다.제갈공명은 작전회의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출격을 중지하고 여기서 적을 맞아
싸우시겠습니까?" 하고 대장인 강유가 말했으나.제갈
공명은 고개를저으면서 "아니 예정대로 출격한다.이곳
에는 3만의 병사와 똑똑한 지휘관을 남겨두면 된다.누
가 가정의 수비를 맡겠는가?"
그러자 금세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원컨데 저에게
맡겨 주십시오."참모인 마속이었다.제갈공명은 그
쪽을보더니 가정은 아군의 중요한 병참기지이며
만약 이곳을잃으면일선부대는 보급에 곤란을 가져
오게 된다. 그대는 병법에는 통하지만 실전의 경험
이 부족하다.경험이 풍부한부장(副將)이 함께 있어
야 한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저는 어릴때부터병
서를 늘 읽어 무예전반에 통하고 있습니다 이 좁은
가정을 지키는 것쯤은 어렵지 않습니다.아무쪼록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사마중달은 보통 무장이 아니다.
사마중달도 역시 인간인 이상 별것 있겠습니까.만약
실패가 있을때는 참형(斬刑)에 처하셔도 이의가 없겠
습니다." 음..평소총애하고 있던 준재(俊才)인 마속이
이렇게 까지 말하는 만큼 제갈공명도 그만 마음을 놓
았다. 좋다 그정도의 각오라면 그대에게 맡기기로 하
겠다.실전에 밝은 왕평(王平)부장으로서 보좌케 할테
니 만사를 잘 의논해서 하라." 이튼날 제갈공명은 가
장 신뢰하고 있던 무장 강유를 선봉으로 하여 장안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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