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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指導者. 大望

주먹 황제 김두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조선 주먹의 황제 김두한

 

 

                                    김두한의 가족들(가운데 따님 김을동)

                                                 김두한의 결혼식 사진

 

 

                                          우리들의 영원한 큰 형님 김두한

 

 

                                                        민중들 앞에서 연설하는 김두한

 

 

 

 

김두한의 첫사랑(?) 박인애

 1950년대 주먹계를 풍미한 '동대문 사단'의 돌격대장 김태련(74.사진)씨가 뇌출혈로 2일 오후 서울 국립의료원에서 숨졌다.

김씨는 유지광 계보의 좌장(座長)이었다.
유지광은 50년대 주먹계에서 이름을 떨친 이정재의 사돈이자 후계자였다.
김씨는 당시로서는 큰 키(1m75㎝)에 호리호리한 몸매, 유도 2단의 무술 실력, 귀공자풍의 외모로 여성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52학번)를 졸업한 인텔리였다.
'남녀가 그리워하는 정'이란 뜻의 '낙화유수' 별명도 여성들이 지어준 것이다.

김씨는 51년 부산 피란 시절 단국대 출신 장윤호를 만나면서 주먹계에 뛰어들었다.
62년 이정재가 군사혁명 정권에 의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유지광이 정치깡패 혐의로 구속됐을 때 동대문 사단을 이끌었다.
생전에 김씨는 "동대문 사단의 대표주먹들은 명석한 두뇌와 깔끔한 매너로 다른 주먹패와는 차별적인 이미지를 가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가 걸어온 길이 사람에 따라 비난할 수 있지만 그래도 한 점 부끄럼 없는 당당한 협객의 길을 걸어왔음을 자부한다"고 했다.

김씨는 5.16 직후 정치깡패로 법정에 섰다.
대학 시절 친구였던 당시 혁명재판부 양준모 판사가 그를 보고 "외교관이 된 줄 알았는데 어떻게 여기 있느냐"고 묻자 서울대 출신이면서 주먹을 쓸 수밖에 없는 시대 상황을 당당히 설명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2003년 11월 고희연에는 김두한의 '종로파', 이정재의 '동대문 사단', 이화룡의 '명동 사단' 등에서 활동하던 원로 주먹들이 대거 참석해 화제가 됐다.

김씨는 말년에 경호회사를 운영했다.
5년 전부터 당뇨를 앓아 100㎏이던 몸무게가 60㎏까지 줄었다.

이날 김씨의 빈소에는 김두한의 후계자 조일환씨, 명동 사단의 대부 신상현씨 등 200여 명이 찾아 유족들을 위로했다.
김씨의 후배 홍승문(64)씨는 "세인들은 정치깡패라고 하지만 한국전쟁 뒤 어수선한 시절에 자유당 정부를 돕는 게 '구국의 길'이란 생각에 주먹을 썼던 것"이라고 그를 회고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부자(72)씨와 1남2녀가 있다.
김씨의 장례는 과거 동대문 사단의 친목단체인 천일동우회(구 화랑동지회) 주관으로 치러진다.


 

혁명자 박정희 소장과 함께

그 당시 우미관 식구들

이사람이 바로 정치깡패 이정재 1961년 10월19일 서대문 형무소에서

박정희의 혁명으로 사형집행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짐

 

 

 

위로부터. 임화수.유지광.이정재.이성순(시라소니)

졸리운눈에 팔자걸음 이 사람이 바로 전설의 싸움꾼 시라소니.


'시라소니는 진짜 싸움을 잘했을까.'

 

SBS 드라마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조상구 역)는 '전설적인 파이터'로 등장한다. 호랑이 새끼 중 못난 놈이라는 의미의 독특한 별명을 지닌 시라소니(본명 이성순·1916∼1983). 어미가 버린 새끼 중 살아남은 시라소니는 천하무적이 된다고 한다.

 

시라소니의 아들 이의현씨(44·목사)는 "아버지는 주먹과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한 타고난 싸움꾼이다"고 회고했다. 김두한의 평생지기 김동회옹(86)도 시라소니에 대해 비슷한 증언을 하고 있다. 김옹은 현존하는 야인 중 시라소니와 맞장을 뜬 유일한 인물이다.

 

김옹은 1949년 겨울쯤 서울 명동극장 인근 공터에서 시라소니와 맞장을 떴다. 당시 김옹은 김두한과 함께 명동극장 옆 맥주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김옹은 술자리에서 이북사투리가 너무 시끄럽게 들리자 시라소니 일행에게 "야! 조용히 술 마셔"라며 시비를 걸었다. 순간 시라소니가 "야, 뭐 어드레!"라며 고개를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라소니는 약자가 건드리면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김옹은 약자처럼 보이지 않았다. 큰 키에 딱 벌어진 어깨와 눈빛만 보아도 예사롭지 않은 싸움꾼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김두한은 두사람이 싸울 것 같아 말렸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김옹이 "한판 붙자"며 대결을 신청했다. 시라소니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서로를 탐색했다. 김옹은 시라소니가 뛰어난 싸움꾼으로 소문나 있어 사전에 장·단점을 파악하고 있었다. 시라소니의 주특기인 '공중걸이 박치기'만 피한다면 승산있는 싸움으로 판단했다.

 

반면 시라소니는 김옹의 싸움 실력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당시 두 사람의 싸움은 유도가 주특기인 김옹과 공중걸이 박치기가 주특기였던 시라소니와 싸움이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두 사람은 10여분 동안 한치의 양보도 없는 피말리는 결투를 벌였다. 그러나 지존을 가리지 못했다.

 

김두한의 중재로 싸움을 중단한 두 사람은 다시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긴 후 화해했다. 김옹은 "시라소니가 워낙 유명한 싸움꾼이어서 결투를 벌이고 싶어 일부러 시비를 걸었다"면서 "시라소니는 정말 대단한 싸움꾼이었다"고 회고했다. 김두한도 말로만 듣던 시라소니의 싸움 실력을 두 사람의 결투를 통해 본 후 시라소니를 주먹 선배로 극진히 모셨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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