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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指導者. 大望

한국전쟁 4대영웅 故 김동석 대령

 

한국전쟁 4대영웅 故 김동석대령 (진미령씨 부친)


 

 
가수 진미령 아버지이신 북파공작원의 대부라 불리는‘전쟁영웅‘ 김동석(82)
예비역 대령은 철저하게 비밀을 요구하는 첩보부대 특성상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의 회고록이 소개되면서는 중견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더 크게 부각될 정도로 지금까지 한국전쟁과 북파공작활동에
얽힌 비밀들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어 왔다.
그러나 김동석 대령에 대한 평가는 미국 정부가 정전협정(1953.7.27)
체결 50주년을 앞두고 1998년부터 2003년까지 5개년 계획으로
한국전쟁 기념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는 김동석 대령을 맥아더. 리지웨이 유엔군 총사령관 및
백선엽 육군 대장과 함께 김씨를 한국전쟁 4대영웅으로 선정했다.
이에 따라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 미 제2보병사단은 2002년 5월7일
의정부시 소재 캠프 레드 클라우드 내 사단 전쟁박물관에 ’김동석 영웅실’을
만들고‘전쟁영웅‘ 칭호를 부여했다.
육사 8기 출신인 김동석 대령은 제17연대 11중대장으로 한국전쟁에
참여해 박성철이 지휘한 북한군 15사단을 전멸시켜 부대 전장병 1계급
특진의 영예를 안았다.
1950년 9월 육군본부 정보참모부 소속 미군 연락장교로 발령받아
첩보세계에 입문해 인천상륙작전과 서울탈환작전에서 결정적
첩보를 수집하는 전과도 올렸다.

 

 

김동석 대령은 최초로 서울에 진주한 북한군 105전차사단 1대대장
김 영 소좌가 포로로 잡히자 끈질긴 설득 작업을 벌인 끝에 평양입성
작전에 필요한 결정적인 정보를 수집해내기도 했다.
그는 육군첩보부대 1사단 지구대장을 거쳐 1952년부터 1961년 5.16 군사혁명이
발생할 때까지 동해안 첩보업무를 담당한 제36지구대를 이끌었다.
그는 1954년 2월 강원도 통천 부근 원산만에서 인민군 사단장 이영희를
생포 납치했고 휴전 이후에도 동해안 일대에서 북파공작업무를
진두지휘했다.
김동석 대령은 1923년 8월 함경북도 명천 칠보산 기슭에서 태어났다.
중국 국민당 애국의용대 부대장과 백범 김구선생의 경호원 등을 역임하고,
대한유도회 부회장(유도8단)과 한미친선골프회 회장 등을 지냈다.
김동석 대령은 "1952년 8월 북한군 17사단장 이. 취임식 참석하기 위해
원산에 들른 김일성을 잡기 위해 현장에 투입됐으나 이른 새벽에
떠나는 바람에 간만의 차이로 놓쳤다"고 말했다.
당시 김일성이 남긴 담배 꽁초에는 온기가 남아 있었다고 했습니다.
김동석 대령은 자신의 북파공작 활동을 담은 'This man, 전쟁 영웅 김동석'
이란 회고록을 2005년 10월에 펴냈습니다.
'This man'은 1950년 9월 맥아더 장군이 그에게 붙여준 별명이라고 합니다.
그는 50년 7월 강화도를 경유, 인천으로 잠입한 뒤 서울에 주둔했던
북한군의 위치와 현황 등 상세첩보를 유엔군사령부에 보내,
맥아더 장군은 'This man'이 보낸 것이냐며 '오케이'하고
인천상륙 작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김동석 대령은 남북한 공작원들 사이에서 'This man'으로 불려왔습니다.
또한 김동석 대령이 서울에서 체포된 북한군 105전차사단 제1대대장 김영 소좌를 설득해 얻은 정보는 국군의 평양 입성에 결정적인 자료가 됐다고 합니다.

 

 

그는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하다 해방을 맡았습니다.
그는 해방 직후 소련군에 체포돼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호송 중이던
박정희와 정일권을 헤이룽장성 부근에서 탈출시켜주었습니다.
육사 8기로 임관한 후 6.25 전쟁 중 육군첩보부대(HID) 창설 요원으로
'공작원 세계'에 뛰어 들었습니다.
하얼빈과 블라디보스토크 등지에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던 부친을
따라다니며 일본어. 중국어. 러시아어 등을 익혔던 것이 첩보부대
창설에 관여하게 된 이유가 됐습니다.
그는 대령으로 예편한 뒤 강원도 삼척군수와 강릉시장, 목포시장(1971),
수원시장(1974), 함경북도지사(1980), 대한유도회 부회장(1982) 등을 지냈죠.
중견가수 진미령(본명 김미령)씨가 딸입니다.
다음은 2005년10월 26일 회고록 출판기념회를 앞두고 김동석 대령이
연합통신과 가진 일문일답입니다.
-- 회고록 제목이 독특한 느낌을 주는데.
▲ 6.25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과 서울수복 과정에서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통해 맥아더 장군에게 넘어갔다.
맥아더 장군이 그때마다 책상 위에 놓인 내 사진을 가리키며 정보 제공자가
"This man"이냐고 질문했다고 한다. 당시 맥아더장군은 나의 정보를
상당히 신뢰했다.

-- 이영희 인민군 사단장을 생포한 대목이 있는데.
▲ 내가 지휘했던 제36지구대는 원산 앞바다 능도와 여도에 제2지대를 배치했다.
당시 원산을 방문했던 김일성을 잡기 위해 투입됐으나 간발의 차이로 실패했다.
다시 매복에 들어간 공작원들이 이영희 사단장을 생포. 귀순시켰다.
--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인연이 각별한데.
▲ 1945년 10월 박정희가 정일권과 함께 쏘련군에 의해 체포돼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송됐다. 헤이룽장성 목단강(牡丹江)에 도착하기 직전에 기차에서
뛰어내려 하얼빈으로 들어왔다.
해방이 되자 나는 조선 애국의용대 대장으로서 5만명 가량의 조선족을
귀국시키는 임무를 수행했다.
정일권은 탈출 과정에서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 중견가수인 딸 진미령씨가 화교로 잘못 알려져 있는데.
▲ (웃음) 중국 대사와 개인적 친분이 있어 한때 미령이를 중국인 학교에
보낸 적이 있다. 미령이가 대만에 1년 유학한 적이 있는데
이런 일들이 잘못 와전된 것 같다.
※ 한국전 영웅 김동석 대령이 2009년 3월 26일 영면하시고
마지막 가시는 사진입니다

 

 

가족들이 영정을 모시고 있다

 

 

영정과 가족들

 

 

분 향

 

전쟁 영웅의 아들과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