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슬링의 전설 역도산 이야기
스모 리키시 시절에 게쇼 마와시를 두른 역도산(리키도잔)
지금 일본의 토쿄 료고쿠 국기관에서는 일본 전통의 국기인
스모경기가 열리고 있다. 스모란? 평균체중 약 150 Kg이나
되는 거구들이 샅바(마와시)를 두르고 지름 4.55미터의 원형
으로 된 씨름판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단판 승부를 겨루는
일본씨름을 말한다.
이 경기는 일본의 국영방송인 NHK에서 TV를 통해서 독점 생중계
하기 때문에 전국의 스모팬이라면 누구나 편하게 시청하고
또한 자기 고향 출신의 스모선수를 열띄게 응원을 보낸다.
일본에서 활약했던 전설적인 레슬링의 영웅 역도산 ...
그의 한국 이름은 김 신락이다.
나는 왜 하필 일본의 스모에 역도산을 소개하려 하는가
역도산도 원래는 스모선수 출신으로스모등급 서열이
정상에서 세번째에 해당하는 산야쿠의 하나인 세키와케
까지 오르는 활약을 하다가 심한 민족차별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프로 레슬러로 전향해서 성공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동시대에 일본 가라테를 평정했던 최영의가 공공연히
한국인임을 알리며 활약했던것과는 대조적으로 역도산은
일본 스모선수로의 대성을 꿈꾸며 도일해서 나가사키현의
오무라시에 살던 모모타 미스노케의 양자가 되어 철저히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숨기며 활동해서 지금도 많은 한국인
들로부터 민족의 아이덴티티가 결여된 행적이 문제가 되어
냉전의 화살을 받는것은 사실이지만
일본사회에서의 마이너리티의 설움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적인 동정이 가지 않을수 없다.
1945년 이후 태평양 전쟁에 패한 일본에는 연합군 사령부가 설치되 고
총사령관인 더글러스 맥아더는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며
자기네들 식으로 일본인들을 길들이는 탓에, 모두들 심한 허탈감에
빠져 있었다. 이때
가요계에서는 한국계 혈통의 피가 흐르는 미소라 히바리가 등장해서
어린나이에도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심금을 울리는 노래를 선사했고,
스포츠계 에서는 야구에서 요미우리 자이언트 팀의 장훈(하리모토) 이
왕정치, 나가시마 시게오와 더불어 소위 "환상의 3인방 최강 클린업
트리오"를 구축하고 "안타제조기"란 별명을 얻으며 맹활약 했고,
일본 스모계에 입문해서 인 세키와케까지 오르는 활약을 하다가
미국의 하와이로 건너가 프로레슬링을 배워와서 일본에 프로
레슬링을 선보이며 일대 붐을 일으키고 스스로 희대의 영웅으로
군림했던 역도산은 분명 우리 민족과 일본인들에 있어서 삶의
활력과 용기를 불려일으켜 주기에 충분했다.
역도산은 일본 강점기인 1924년, 11월 14일,
북한의 함경남도 홍원군 용원면 신풍리에서 당시 정미소를 하던 김석태의 3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신락이다.
타고난 신체적 조건과 운동신경으로 씨름에 소질을 보인 소년 김신락 이
일본에서 스모를 하기 위해 건너가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것은
15살때인 1938년에 있었던 조선일보 주최 씨름대회에서 큰 형인
김항락은 우승하고, 김신락은 3위에 입상해서 이를 눈여겨 본
일본의 형사보 오가타의 적극적인 권유로 1939년 도일해서
나가사키현 오무라시에서 모모타 미스노케의 양자가 된다.
이듬해인 1940년, 니쇼노제키 베야에 입문해서 리키도잔이란
시코나(스모선수의 이름)를 받아서 스모선수로써의 몸을 만들고
본격적인 맹연습을 해서 5월달에 거행된 하츠바쇼 (여름경기)에
출전해서 첫 씨름판에 서게 되었다.
역도산이 스모선수로써 최고의 지위에 오른것은 그의 나이 25살
되던 해인 1949년으로 산야쿠의 하나인 세키와케로 챔피언격인
요코즈나와도 명승부를 펼치며 주목을 받으며 활약했으나
이듬해에 돌연 스스로 머리를 자르고 은퇴를 해서 기대를 건
많은 스모팬들에게 많은 아쉬움과 실망을 준게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스모선수가 은퇴할때는 통상 같은 숙소에서
한 밥을 먹던 동료들의 축하속에 스모선수들이 하는
<스모마게>라고 하는 상투머리를 짧게 자르는 단발식을
치루는데, 역도산은 이 스모 전통을 깨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차별 즉 외국인은 챔피언격인 요코즈나에 오를수 없다는
사실에 크게 실망하고서 이에 항거한 행동이 아니었던가 생각해 본다.
1958년, 루테스를 꺽고
NWA 인터네셔날 프로 레슬링 세계 헤비급 챔피언이 된 역도산
스모를 그만둔 역도산은 니이타건설의 공사 자재부장 일을 하게 된다.
당시 일본은 전쟁으로 폐허가 되어 있어 연합군 총사령부가
주둔해서 공사를 발주하고 전국은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다.
이 니이타 건설은 일본 아쿠자와 관련이 있는 회사로써
나중에 역도산의 운명을 매듭짖게 하는 숙명의 관계가 되었다.
니이타 건설에 근무하던때, 한 나이트 클럽에서 만나서 알게되어
의기투합으로 사귀게된 화와이 출신의 일본계 레슬러인
하로루도 사카다를 통해서 프로레슬가 되기로 결심한다.
연합군 사령부는 일본 부흥책의 일환으로 미국에서 인기 있던
스포츠를 소개하고 장려 하였다. 미국의 프리 메이슨 사단이
운영하던 <슈라이나즈 클럽>은 프로 레슬링경기로 미국에서
흥행에 성공을 거둔 단체로 일본에도 연합군 사령부의 지원을
받아서 순회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15년간 불패의 신화를 이룩하던 일본 유도의 영웅
기무라 마사히코와의 건곤일척의 영욕을 가른 승부
*과격한 이미지의 프로 레슬러와는 달리
매우 가정적인 이면을 보여주고 있는 요리하는 역도산
1952년, 역도산은 하와이의 호놀룰루로 건너가서
본격적으로 프로 레슬링 수업을 받고 돌아와서 닛타 신사쿠,
나가다 마사오와 함께 일본 프로 레슬링 협회를 창립하고
정재계의 실력자들과 만나서 지원을 요청하고 레슬링협회
발전을 위해 진력했다.
그는 흥행의 성공을 위해서 외국에서 유명 레슬러를 불러들이고
일본 스모의 챔피언인 요코즈나 아즈마 후지등을 링에 올려서
이목을 집중 시키고 자신은 일본 전통무도인 가라테를
접목시킨 소위 "가라테 촙"이라는 화려한 특기를 구사해서
외국의 거한들을 때려눕히는 시합을 펼쳐서 그때까지
생소했던 이 프로 레슬링이 흑백TV시대의 개막에 편승해서
일대 신드롬을 일으키고 흥행에도 성공하며 부와 명예를 얻게 되었다.
역도산을 흠모해 프로 레슬러의 꿈을 안고 일본에 건너가 제자가 되어
"박치기 왕"으로 널리 사랑을 받았던 김 일(오기 긴타로)
스승 역도산의 무덤을 찾은 제자인 세계적인 프로 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세기의 대결"로 전 지구촌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프로복싱 헤비급 챔피언 무하마드 알리와의
대전은 아직도 내 머릿속에 선명히 각인 돼 있다.
김 일, 안토니오 이노키와 더불어
역도산의 제자 3인방의 한 사람으로 인기를 구가했던
프로 레슬러 자이언트 바바
1950년대와 1960년 전반기 일본 프로 레슬링계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의 팬을 그토록 열광시키고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 풍운아 역도산의 삶을 39년밖에 허락하지 않았다.
1963년 12월 8일,역도산은 흥행을 위해 프로 레슬링 관계자들과
토쿄의 고급 나이트 클럽인 뉴 나틴 쿼터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마침 일본 폭력단 조직(야쿠자)인 스미요시파의 일원이었던
무라타 가츠시로와 시비가 벌어져서 결국 무라타의 칼에 맞아서
아카사카의 산노 병원으로 이송되어 수술을 받았으나 회복하지
못하고 1963년 12월 15일, 끝내 이 세상을 하직해야 했다.
프로 레슬링 영웅으로 한 시대를 화려하게 풍미했던 역도산이
야쿠자의 칼에 맞아 최후를 마친 아카사카의 산노병원
역도산은 세번 결혼을 했다.
일본에 건너가기 전에 북한의 고향 함경남도 신포시 신풍리에
첫번째 아내 방신봉이 있었고 딸도 하나 두었다. 그리고
일본 건너가서 1950년, 두번째 아내인 오자와 후미코를
만나 2남 1녀를 낳고 1959년까지 동거했다.
마지막 부인은 역도산이 숨을 거둔지 불과 6개월전에 결혼식을
올려 스위스에 신혼여행을 하고 돌아와 딸을 임신해 히로미를
낳은 경찰서장의 딸인 일본항공의 스튜워디스 출신의
다나카 게이코 이다. 꽃다운 나이에 6개월이라는 너무나 짧고
가혹한 부부의 인연을 맺은 이 미망인 다나카 게이코씨는
지금도 망부의 유업을 받들어 주워진 운명을 달래며 조용히
집필 활동과 레슬링 관계의 일을 도우며 여생을 보내고 있다.
1963년 6월 5일, 역도산이 세번째 아내인
다나카 게이코와의 결혼식을 올릴때의 사진
중:역도산의 미망인 다나카 게이코씨의 근영사진
한국 출신의 스모선수 김 성택(가스가오)의 단발식때
머리를 자르는 역도산의 미망인 다나카 게이코씨
역도산의 두번째 부인인 오자와 후미코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아들로, 일본 역대 최고령의 프로 레슬러
역도산이 영면하는 유택, 토쿄의 이케가미 혼몬지
美空ひばり / 男の自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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