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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과 사 전

漢字와 人間形成

企劃論壇

 

漢字와 人間 形成 (1)

 

Ⅰ. 言語와 文字

 

요새는 병아리를 기계로 까고 기계적으로 기르기 때문에 어미닭과 병아리 사이의 自別(자별)한 사이를 볼 수 없다.  어미닭이 알을 품고 있을 때는 최소 한도의 生理的(생리적) 처리 외에는 자리를 뜨지 않는다. 그러면서 가끔 알을 발로 굴린다. 어미의 溫氣(온기)가 골고루 미치게 하기 위함이리라. 보통 때는 닭이 사람을 보면 붙잡히지 않으려 달아나기가 일쑤인데, 둥지에서 알을 품고 있을 때는 꺼떡을 안 한다. 

      

품은 지 3주일이 되면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시작한다. 이때 알 속에서 생긴 병아리가 알 바깥으로 나오려고 소리를 내고 어미는 感(감)을 잡아 바깥쪽에서 억센 부리로 껍질을 쫀다. 이때 병아리와 어미의 호흡이 一致(일치)돼야지, 어미가 너무 늦게 쪼면 병아리는 알 속에서 窒息死(질식사)하고, 너무 일찍 쪼면 덜된 병아리가 생명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間髮(간발)의 차이도 없이 알 속의 병아리와 밖의 어미가 호흡이 맞아 울고 쪼아야 한다. 이것을 口卒啄同時(줄탁동시)라고 한다. 口卒(줄)은 알 속의 병아리가 밖으로 나오고파 소리를 내는 것이며, 啄(탁)은 어미닭이 밖에서 알을 쫀다는 뜻이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소리내는 것을 어찌 어미가 들을까마는 六感(육감)으로 느끼며, 그 기회를 놓칠세라 瞬發力(순발력) 있게 쪼는 것이다.


이것은 병아리와 어미닭의 최초의 對話(대화)라겠다. 병아리는 어미가 보이지 않으면 삐약삐약 소리치고, 어미닭은 내 여기 있노라고‘꼭 꼭 꼭 꼭’소리치면, 병아리가 어미닭 쪽으로 달려간다. 병아리는 모이를 주워 먹을 때 맛이 있다는 느낌을 종종 종종 소리내며 먹다가도 어미닭이 하늘에 수리가 뜨면‘고옥’하면 일제히 삐약삐약하던 소리를 뚝 그치고 쏜살같이 어미닭 품 속으로 쑤시고 들어간다. 비상 사태에 이러한 安全保障策(안전보장책)으로 어미닭의 고마움을 느끼는 어미와 새끼 사이의 交感(교감)이 기계로 깐 병아리에게는 없다. 말하자면 言語道斷(언어도단)의 삭막한 情況(정황)이 펼쳐질 뿐이다.


참새 새끼들도 둥지 속에서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 짹짹짹짹 지절이다가 어미새가 밖에서 굵고 낮은 소리로 위험 신호를 보내면, 그 순간 소리를 딱 그쳐 쥐죽은 듯이 고요해진다.


침팬지는 群居(군거) 생활을 하는데 반드시 높은 데서 망을 보는 당번이 있어 적의 掩襲(엄습)이 있을 가망이 있다는 軍號(군호)를 보내면, 각기 정해진 부서에서 위험 방지 態勢(태세)로 突入(돌입)한다고 한다.

이 예들로 동물들에게도 意思疏通(의사소통)을 하는 언어가 있음을 알겠다. 그러나 사람의 언어처럼 다양하고 도덕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 세상에는 3,000여 가지의 言語와 450가지의 文字가 있다고 한다. 언어 곧 말은 시간과 空間(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지금 이야기한 것을 그 자리에 있지 아니한 사람은 듣지를 못한다. 언어가 시간과 공간의 制約(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제약을 깨뜨리기 위하여 만든 것이 文字다. 역사는 바로 言語와 文字로 기록해 놓은 것으로 時空(시공)을 초월해 영구히 전해진다.  

  

文字에는 漢字와 같이 뜻을 기록하는 表意文字(표의문자)와 로마자나 한글, 日本의 가나와 같이 音을 적는 表音文字(표음문자)가 있다. 우리는 지금 한글과 漢字, 로마자와 아라비아數字를 쓰고 있다.

 

Ⅱ. 한글과 漢字

 

한글은 1443년에 朝鮮朝(조선조) 제4대 世宗大王(세종대왕)이 손수 지은 訓民正音(훈민정음)으로 1997. 9. 19 UNESCO 지정 世界文化遺産(세계문화유산) 중 세계 記錄遺産(기록유산)으로 등록이 되어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이 인정을 받는 훌륭한 表音文字다. 로마자가 갖추지 못한‘어, 으, 애, 끄, 뜨, 쁘, 쯔’의  音을 다 갖추어, 세계 어느 나라 말이고 한글로 표기하면 언제 어디에 어느 나라 사람이 읽든지 같은 소리를 낼 수 있는 발음기호적 요소를 兼備(겸비)한 글자다.  


漢字는 3000년 전 중국 殷代(은대) 甲骨文字(갑골문자)로 實證(실증)이 되는 表意文字(표의문자)로, 形(형), 音(음), 義(의)와 六書(육서)로 구성돼 있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形)을 했으며, 음(音)은‘목’, 뜻(義)은‘나무’다. 짜임으로 보면 여섯 가지 곧 六書(육서)로 나뉜다. ① 物體(물체)의 모양을 그린 象形(상형) 글자로 해의 둥근 모양을 그린‘날 일(日)’, 산의 모양을 그린‘메 산(山)’, 개울물이 흐르는 모양을 그린‘내 천(川)’이 그 예다. ② 線(선)이나 點(점) 같은 것으로 事物(사물)의 성질을 나타낸 指事(지사) 글자로‘한 일(一), 두 이(二), 석 삼(三), 윗 상(上), 아래 하(下)’등이 그 예다.  ③ 두 개의 글자를 연결지어 새로운 뜻을 나타내는 會意(회의) 글자로 사람〔人〕과 사람 사이의 말〔言〕은 곧 약속인데, 약속을 지킬 때 미쁨이 생긴다는‘믿을 신(信)’,  낮은 해〔日〕가 밤은 달이 비쳐 밝게 된다는‘밝을 명(明)’이 그 예다.  ④ 모양을 그린 글자와 소리를 나타내는 글자가 아울러 이루어진 形聲(형성) 글자로 풀(蕉)의 뜻과 소리 화(化)가 어울려‘꽃 화(花)’, 물(淸)과 소리 목(木)이 어울려‘머리감을 목(沐)’이 그 예다. 이 네 가지는 글자가 어떻게 짜였느냐는 측면에서 본 것이고, 다음 두 가지는 이미 된 글자를 어떻게 活用(활용)하느냐 하는 측면에서 이루어진 글자다.  ⑤ 뜻이 서로 통하는 것을 서로 통용하는 轉注(전주) 글자로 고(考)·로(老)를 서로 늙었다는 뜻으로 통해 쓰고, 공(共)과 동(同), 의(依)와 의(倚)도 서로 통해 쓴다.  ⑥ 소리는 있는데 글자가 없을 때 旣成(기성)의 글자를 빌려다 쓰는 假借(가차) 글자로 焉(언)은 본시 새의 이름인데 語助辭(어조사)로 쓰고,‘계집 녀(女)’가 ‘너 여(汝)’로  쓰이는 것이 그 예다.


漢字를 모를 때에는 字典으로 찾는다. 漢字 字典이 玉篇(옥편)이라 불리는 것은 梁(양)나라 顧野王(고야왕)이 편찬한 玉篇(옥편)에 근원하고 있다. 字典의 大部書(대부서)는 淸(청)나라 康熙(강희) 49년(1710)에 勅命(칙명)으로 간행된 康熙字典(강희자전)으로 49,030자가 수록돼 있다. 說文(설문)과 玉篇 두 가지 책을 기본으로 그때까지 이룩된 漢字 전부를 모은 總數(총수)다.  1959년에 일본 모로하시(諸橋轍次) 씨가 간행한 大漢和辭典(대한화사전) 12책에는 48,902자가 수록되고, 우리 나라의 權丙勳(권병훈) 옹은 1940년에 六書尋源(육서심원)에 약 6만 자의 漢字를 수록했다.  

   

이러한 字典이나 玉篇에서 모르는 漢字를 찾을 때에는 214부(部)로 나뉜 부수(部首)로 갈라, 획수를 헤아려 찾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總劃數順(총획수순) 索引(색인)에서는 같은 획수는 部首順(부수순)으로 배열한 데서 찾아야 한다. 한글 音順(음순)으로 배열한 索引(색인)에서는 音이 같을 경우 部首順으로 배열한 데서 찾는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얼마만한 漢字를 알면 될 것인가. 1955년에 당시 文敎部(문교부)에서 행한‘우리 말에 쓰인 글자의 잦기 조사〔文字頻度調査〕’에 나타난 漢字는 3,312자다.

내가 1960년대 중·고교 全科目(전과목) 교과서에 괄호 속에 들어 있는 漢字를 조사했더니 서로 다른 글자가 3,503자였다. 1972년 8월에 당시의 문교부에서 공포한 漢文敎育用 基礎漢字(한문교육용 기초한자)는 1,800자다. 그 글자들이 그 범위 밖에서 하나씩 결합시키는 데 필요한 3,600자보다 적은 3,503자의 漢字를 익히면 일상생활에는 물론 중·고교 전과목 課程(과정)까지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고, 그것은 대학 과정까지도 필요한 漢字를 찾아 가며 익히면 큰 지장이 없을 수준이다.

 

Ⅲ. 漢字와 傳統文化

 

우리 나라에 漢字가 들어온 것은 최하한을 잡아도 漢武帝(한무제)가 한강 이북에 漢四郡(한사군)을 설치한 元封(원봉) 3년(B.C. 108)을 더 내려올 수는 없겠다. 현지 주민에게 최저 한도의 글자를 가르쳐 부려야 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先人(선인)들은 漢字 漢文으로 기록된 位差(위차) 높은 중국 문화를 쉽게 消化(소화) 흡수하고 우리 傳統文化(전통문화)를 기록해 축적시켜 내려왔다. 우리의 國字 訓民正音이 나온 뒤에도 論文이나 文集 등 先人들의 기록물이 대부분 漢文으로 되어 있다.

 

世宗大王은 訓民正音 序文에서 漢文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해 자기의 意思(의사) 표시를 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백성〔愚民〕들이 日常生活(일상생활)에 편리하도록 새로 28자를 만들었을 뿐〔  耳〕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므로 學問(학문)이나 모든 기록 생활에 한글 專用을 하라고 한 마디도 한 일이 없다. 그리하여 世宗大王은 龍飛御天歌(용비어천가)같이 漢文을 아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글은 막바로 漢字 混用(혼용)을 하고, 月印千江之曲(월인천강지곡)과 같이 漢字나 한글을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글은 한글에 漢字를 倂用(병용)했다. 한글만을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한글 專用을 했다.     

 

漢文을 우리 말로 번역할 때에는 原文(원문)을 쓴 사람과 견줄 만한 실력이 있는 사람이라야 글의 원뜻을 여유 있게 전달이 되게 할 수 있다. 겨우 文脈(문맥)만 짐작하는 사람은 불충분하고, 때에 따라 원뜻을 잘못 취해 혼란을 가져오게 하기가 일쑤다. 그러므로 번역된 글이라고 덮어놓고 믿을 수는 없다.


寺刹(사찰)이나 由緖(유서) 있는 韓屋(한옥) 같은 데에는 漢文으로 쓴 懸額(현액)이나 柱聯(주련)이 걸려 있는데, 우리 초·중·고등학생은 물론 대학생 내지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읽을 생각은 아예 내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린다. 그러나 中國이나 日本에서 온 학생들은 소학생이라도 그것을 적어 가며 읽으려고 든다.

 

교보문고 같은 데 가 보면 이른바 한글 世代(세대)들이 괄호 안에 漢字가 더러 섞인 책이라도 아예 제쳐 버리고 살 체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출판하는 이들은 한글 專用(전용) 추세로 나간다. 그러나 역사적인 件名(건명)이나 과학 용어, 인명·지명 등 固有名詞(고유명사)는 쉽게 풀어 쓸 수가 없기 때문에 뜻 전달이 인상 깊게 되지 않는다. 가령 조선조 초기의 安堅(안견)의 夢遊桃源圖(몽유도원도)를 한글로만 써 놓으면 전혀 짐작을 하지 못할 것이다. 安平大君(안평대군)이 꿈에 陶淵明(도연명)의 桃花源記(도화원기)에 나타난 고장에서 노닐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린 그림이란 뜻을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으랴.          

 

이 ‘몽유도원도’는 국어 사전에는 나오지도 않는 말이고 보면 꼼짝도 할 수 없는데, 漢字로 표기하면 글자 하나하나를 사전에서 찾거나 물어서라도 전체 뜻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사람의 성명에서도 가령 成三問(성삼문)은 姓(성)이 成씨인데, 그가 날 때 하늘에서 났느냐를 세 번 거듭 물었을 때 났기 때문에 三問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얼마나 인상적으로 기억이 쉽게 되는가. 지금 스포츠신문 같은 데 주먹 같은 활자로 선수들의 이름을 고딕체 한글로 찍어 내는데, 그 글씨의 반 크기로 漢字로 쓰고 옆에 한글로 조그맣게 음을 달아 놓더라도 선수의 이름이 더 인상적으로 머리에 入力(입력)이 돼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漢字로 찍은 명함을 받으면 氣(기)가 통한다고 한 이가 있다. 가령 신길동을 辛吉童으로 적었을 때 신씨에 申·愼·辛 세 가지가 있는 중 辛씨인 것이 분명하며, 吉(길)한 일이 있을 아이라는 뜻을 읽을 수 있으니, 얼마나 분명하게 머리에 입력이 되겠는가. 姓(성)과 이름을 잊으려야 잊혀지지 않으므로 氣가 통한다는 것이다. 뜻없는 말을 기계적으로 暗記(암기)하면 기계적으로 잊어버리게 된다. ‘포물선’과 ‘포경선’의 경우 한글로는 가운데 글자만 서로 다르지만 漢字로는 다 다르다. ‘포물선’은 ‘던질 포(抛), 만물(물건) 물(物), 줄 선(線)’으로 이루어진‘抛物線’이니‘물건을 던질 때에 그려지는 선’이라는 뜻이 분명하게 잡힌다. ‘포경선’은 ‘잡을 포(捕), 고래 경(鯨), 배 선(船)’으로 이루어진‘捕鯨船’이니‘고래를 잡는 배’라는 뜻을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글자들이 다른 글자들과 결합될 때 벌써 반을 알고 들어가니, 語彙力(어휘력)이 자동적으로 伸張(신장)된다.

 

서울의‘충정로’는 ‘충성 충(忠), 바를 정(正),  길 로(路)’로 ‘忠正路’가 된다.  韓日合邦(한일합방)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은 忠正公(충정공) 閔泳煥(민영환)의 號(호)를 따 붙인 거리 이름이다.  忠正路를 漢字로 써 놓으면 忠正公에 직결이 되지만, 한글로‘충정로’라 써 놓으면 막연하기 짝이 없다.


그래 나는 거리의 壁面(벽면)은 거대한 漆板(칠판)이라, 漢字語로 된 간판에 漢字 倂記(병기)를 해 놓으면, 학생들의 漢字 공부의 교재 구실도 되고, 뜻이 분명하고 印象(인상) 깊게 전달이 되게 한다고 주장한다.  

 

이리하여 傳統文化(전통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여 消化(소화)하고, 創造(창조)하여 후손에게 펼쳐 가려면 漢字가 그 중요한 媒體(매체)가 된다는 것을 알고 漢字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漢字倂記의 當爲性과 初等漢字敎育 (Ⅲ)

 

公文書(공문서)나 道路標識板(도로표지판) 그리고 주민등록증에 漢字를 倂記하는 것은 우리 言語構造(언어구조)의 特性(특성)으로 보나 國際關係(국제관계)로 보나 國語文字(국어문자) 표기의 諸規定(제규정)으로 볼 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漢字倂記의 當爲性(당위성)에 대하여는 前述(전술)한 바 있거니와 朝鮮日報(1999. 2. 11)에서도 “「한자 文盲」이대로 안 된다”는 記事(기사)를 3회에 걸쳐 발표한 바 있다. 이것은 漢字倂記의 當爲性을 더욱더 분명히 해준 金科玉條(금과옥조)의 기사였다.

 

이러한 漢字倂記 조치가 아무리 當爲性이 짙다 하더라도 漢字를 읽는 사람들이 漢字文盲者(한자문맹자)라면 漢字倂記는 아무런 意味(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기에 금년 2월 9일 申樂均 長官이 國務會議(국무회의)에서 漢字倂記를 우선 추진하고 2단계로 漢文 敎育體系(교육체계)를 재검토하겠다고 報告(보고)했다.

 

그동안 漢文科 敎育은 72년 이후 獨立敎科(독립교과)로서 中學校에서 900字, 高等學校에서 900字, 總 1,800字를 漢文文章(한문문장)을 통해서 가르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3차 敎育課程期(교육과정기)부터는 漢文科를 獨立敎科(독립교과)로 設定(설정)하고 敎育課程(교육과정)도 별도로 제정하여 漢文敎科書(한문교과서)를 편찬하여 교육해 왔다. 5차 敎育課程(교육과정)부터는 漢文科 敎育課程 解說書(해설서)까지 출간하여 漢文敎科書와 더불어 他敎科(타교과)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敎材(교재)가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체계성이 있고 단계적으로 엮어진 이 敎材들은 科學的(과학적)이고 論理的(논리적)이어서 現代 교수 學習 이론에 걸맞는 漢字漢文學習(한자한문학습)의 길잡이 노릇을 해 왔다.

 

그러나 지금의 大學生들이나 젊은 世代들의 漢字學力의 實態(실태)를 살펴보면 漢字 漢文敎育은 완전히 실패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中學校나 高等學校의 漢文科 敎育目標(교육목표)를 보면 敎育用 基礎漢字 1,800字의 음과 뜻을 알고, 漢字語(한자어)를 바르게 읽고 쓰며 언어생활에 활용할 수 있게 한다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大學生들이 ‘韓國’과 ‘哲學’을 읽지도 못하고 교수들의 저서에 表記된 漢字를 읽지 못할 뿐만 아니라 圖書館(도서관)에서 漢字가 섞인 著書(저서)의 題目(제목)조차도 읽지 못하여 참고도서를 찾지 못하고, 漢字를 板書(판서)하면서 강의를 하면 강의 내용을 이해하기 힘들어 그 강의를 기피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言論界(언론계)나 企業界(기업계)에서 記者나 社員들이 漢字를 알지 못해서 記事作成(기사작성)이나 産業活動(산업활동)에 큰 지장이 있어 勤務現場(근무현장)에서 漢字敎育을 시키거나 3급 이상의 漢字能力檢定試驗合格證(한자능력검정시험합격증)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 中·高等學校에서 배우기로 되어 있는 1,800字만 제대로 習得(습득)하고 있다면 언론계나 산업계 또는 일반 사회에서 이러한 방법을 취할 까닭이 없다.

 

이러한 現實情(현실정)은 어떤 이유가 있든 漢文科 敎育의 실패를 論證(논증)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 필수 과목이던 漢文敎科를 선택시간인 裁量活動(재량활동)으로 전락시켰기 때문에 中學校 과정에서 배워야 할 漢字 900字를 배울 수 없도록 시간을 박탈당했다. 중학교에서 900字를 익혀야 高等學校에서 漢文敎科를 배울 수 있는 수학능력이 있을터인데 中學校에서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高等學校에 가서도 漢字學力 不足으로 漢文을 선택하지 못하거나 기피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다 보니 高等學校 漢文科 교육도 正常化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中等學校 一線에서 漢文을 指導(지도)하는 교사들은 그들 나름대로 여러 가지 惡條件(악조건) 속에서도 敎科的(교과적)인 下待(하대)와 精神的(정신적)인 푸대접을 받으면서도 그 位相(위상)을 지키기에 最善(최선)을 다해서 漢字漢文敎育에 전념해 왔다. 더구나 요즈음에는 中學校 漢文敎科가 선택과목으로 轉落(전락)되자 漢文敎科 專攻보다는 副專攻을 권유하는 교장들도 다수 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나마 漢文時間을 빼앗아 영어나 수학 등 入試(입시)에 이용하는 시간으로 대체하고 있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이처럼 열악한 學習條件(학습조건)과 學習環境(학습환경) 속에서도 漢字漢文 교육을 위한 교사들의 努力(노력)에도 불구하고, 漢字漢文敎育의 결과는 漢盲(한맹)을 양성하고 말았다는 사회적인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이렇게 漢字學力이 황폐화 된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한정된 紙面(지면)관계로 골골이 찾아서 論述(논술)할 수는 없으나 巨視的(거시적)인 안목으로 考察(고찰)해 보면 필수교과였던 中學校 漢文敎科가 선택 敎科(교과)인 裁量活動(재량활동)시간으로 전락된 점과 고등학교나 大學入學試驗(대학입학시험)에 漢字漢文評價를 제외한 것이 漢文學習의 실패의 원인이 되었다. 다시 말하면 大學修學能力試驗(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漢字漢文을 한 문제도 出題(출제)하지 않고 있어 大學강의나 學問硏究(학문연구)에서 漢字를 읽지도 못하는 학생이 허다하다 하니 과연 大入修能考査(대입수능고사)평가가 本然(본연)의 구실을 다하고 있는지 疑問(의문)이 간다.

 

작년 서울大 工大 국어 작문 강의를 맡은 국문과 任洪彬(임홍빈) 교수는 “첫시간에 科目 소개를 하면서 漢字 讀音(독음) 시험을 두 번 치르겠다고 예고하고 다음 수업시간에 들어가 보았더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변경해 다른 수강과목으로 바꾸어 버렸더라”고 한다.

 

이와같이 大學生들이 漢字를 기피하려는 것은 첫째 漢字를 잘 모르기 때문이며, 둘째는 국어생활이나 學問世界(학문세계) 그리고 東洋의 국제관계에서 漢字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인식하지 못하는 意識構造(의식구조)때문이다. 일류 대학에 입학하려는 입시위주로 공부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敎育風土(교육풍토)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에 漢字가 전연 출제 되지 않고 있으니 학생들이 漢字공부를 하지 않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大入修能(대입수능)시험에서 최소한 言語領域(언어영역)에서나마 地文(지문)을 국한混用文(혼용문)으로 출제하고 중요한 漢字語나 格言(격언) 등을 출제한다면 漢字漢文에 대한 인식이 새로워질 것이다.


韓國語(한국어) 구조상 公文書(공문서)나 標識板(표지판) 등에 漢字를 倂記해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인식한다면 當局(당국)은 꼭 필요한 數의 漢字를 선정하여 가르쳐야 할 義務(의무)가 있고 또한 학생들은 배워야 할 學習權(학습권)이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학교교육이 입시위주의 敎育함정에서 벗어나 百年大計(백년대계)를 위한 正常的(정상적)인 교육을 成就(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初等學校敎育부터 바로잡아져야 한다. 漢字는 우리 言語의 核心的(핵심적) 구실을 한다. 그러기에 初等敎育에서 그 어떤 敎科보다도 중요한 기초도구 교과인 것이다. 그러기에 初等學校 때부터 漢字敎育을 철저히 시행해야 한다.

 

우리 固有語(고유어)와 漢字語로 이루어진 우리 言語構造(언어구조)의 特性(특성)은 말할 것도 없고 漢字의 중요성이나 필요성, 그리고 漢字 병기의 당위성을 감안할 때 漢字교육은 어려서부터 早期(조기)에 이루어져야 한다.

 

의학박사 박만성은 ‘총명한 두뇌만들기’라는 저서에서 「人間의 言語센터(두뇌)의 발달은 18세까지 자란다. 특히 6세에서 10세 사이의 言語센터는 1년간에 2천∼5천의 語彙(어휘)를 익힐 수 있으나 어른의 경우는 1년에 2백 단어 정도밖에 익히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우리 國語의 70% 이상이 漢字語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造語力(조어력)이 뛰어난 漢字를 조기에 교육한다면 語彙習得(어휘습득)의 效果(효과)는 물론, 상상을 초월하는 學力과 思考力(사고력)이 伸張(신장)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漢字文盲(한자문맹)으로 바람직한 國民精神(국민정신)과 文化수준, 그리고 知識(지식)의 下向性(하향성)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文化文明(문화문명)과 學問의 向上(향상) 발달을 위하여 우리 言語의 핵심인 漢字를 初等學校에서부터 조기에 가르쳐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를 形成(형성)하기에 積極的(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며 漢字敎育에 대한 새로운 國民意識(국민의식)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날에는 국민의식이 한글만 사랑하는 것이 愛國者(애국자)요, 漢字사용을 주장하는 사람은 事大主義者(사대주의자)요, 非愛國者(비애국자)로 매도해 왔으나 우리 文字言語(문자언어)의 構造(구조)가 한글과 漢字로 構成(구성)되어 있다는 言語의 恣意性(자의성)을 考慮(고려)할 때, 「한글+漢字」의 言語意識(언어의식)이 바람직한 현대적인 國語觀(국어관)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공문서나 표지판 등에 漢字를 倂記해야 文字言語生活(문자언어생활)이 원활해짐을 깊이 認知(인지)하고 漢字敎育도 한글교육 못지 않게 중요함을 각성하여 初等學校때부터 조기에 漢字敎育을 시행해야 함을 우리는 大悟覺醒(대오각성)해야 한다.

 

1972년 敎育用 基礎漢字 選定(교육용 기초한자 선정) 당시에도 初等學校에서부터 조기에 漢字敎育을 시행해야 한다는 사회적인 여론에 따라 1972년 4월에 閔寬植 文敎部 長官이 國務會議(국무회의)에서 보고한 漢字敎育方針(한자교육방침)에서 初等學校의 漢字敎育은 1972년도 중에 실험학교를 운영하여 初等漢字敎育 실시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으나 한글 전용자들의 세력에 밀려 이제까지 初等學校 漢字교육의 공식적인 실험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므로 본인은 敎育現場(교육현장)의 初等漢字敎育의 實態(실태)를 살펴보고 初等漢字敎育의 새로운 方向(방향)을 摸索(모색)해 보고자 한다.

 

1. 初等學校의 漢字敎育 實態

 

1968년 10월 25일 한글 전용 추진 7개항을 박정희 대통령이 지시하여 각종 敎科書에 있는 漢字를 삭제하고 言論出版界(언론출판계)에 한글 전용을 적극 장려하도록 했다. 그리고 1969년 9월에 敎科課程(교과과정) 개정령이 공포되어 漢字교육의 근거가 삭제되고 敎科書(교과서)에 표기된 漢字를 삭제하게 되었고, 1970년 1월 1일부터는 모든 公文書(공문서)와 기타 표현물을 완전히 한글로만 표기하도록 하였다. 그 후 1972년 8월 16일에 中高校用 한문 교육용 기초 漢字 1,800字가 공포되었다. 이때부터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漢文科 敎育을 獨立敎科(독립교과)로 교육할 수 있게 하였고, 初等學校에서는 漢字敎育을 禁止(금지)하게 되었다.

 

그때 당시 光州 초등학교 모교사가 국어 시간에 漢字를 가르쳤다 하여 징계처분까지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초등학교 교육 분위기 속에서 漢字교육은 完廢(완폐)되는 학습환경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政權(정권)이 바뀌자 漢字교육의 認識(인식)이 점점 달라져 漢字교육의 當爲性(당위성)을 주장하는 學會(학회)와 많은 학부모들의 希望(희망), 그리고 初等漢字敎育을 몸소 실천하는 교장과 교사들이 앞장서게 되자 初等 漢字교육의 분위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특히 1994년 2월 7일부터 朝鮮日報에 연재된 ‘亞太시대 「우리들의 국제문자」 漢字를 배웁시다’의 17회에 걸친 기사는 국민들의 漢字교육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의욕을 불러 일으켜 주었고 初等學校漢字敎育을 希望(희망)하는 學父母(학부모)들의 수가 84%를 넘나들게 되자 初等漢字敎育의 분위기는 새로운 분위기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금년 2월에 國務會議(국무회의)에서 通過(통과)된 公文書(공문서)나 표지판 등에 漢字倂記한다는 公布(공포)는 初等漢字敎育의 촉진제가 된 것이다.


그동안 初等漢字교육이 正規敎科(정규교과)로 설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침자습시간이나 점심시간 또는 방과 후에 뜻있는 교장이나 교사들의 열의에 의하여 실시되어 왔다. 특히 서울의 경우 洪光植 교장이나 郭仁成 교장, 全漢俊 교장 등은 초등한자교육에 앞장서서 漢字교육 부활에 크게 이바지 했을 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의 극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일선 교사들은 의욕이 앞서긴 하나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初等學校에서 가르쳐야 할 漢字를 國家的(국가적)인 次元(차원)에서 선정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시말하면 敎育部(교육부)에서 漢字를 正規敎科(정규교과)로 策定(책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法學徒 觀點에서  國語 問題 課題[Ⅲ]

 

제5장 國語生活의 現在

 

1. 不正確(부정확)한 한글어의 亂舞(난무)

예컨대 ‘駐車場(주차장)을 둠, 呼出(호출)을 부름, 支拂(지불)을 줌, 受信(수신)을 받음, 速達(속달)을 빠른’ 등은 정확한 말은 아니나 일상 대중어로는 그런 대로 통한다. 법률적 관점에서는 이것은 쉬운 말인 것 같으나 실은 혼돈과 다툼을 야기시키는 어려운 말이 되고 思考(사고)의 시간을 낭비하는 말이 될 수 있다.

 

2. 일상언어에 외래어 특히 영어의 過多用(과다용)이나 濫用(남용)으로 외래어를 숙지하지 못한 이가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고 쓰거나 혼동 또는 혼돈을 야기시키는 경우가 非一非再(비일비재)하다. 특히 버전, 유닉스, 클릭, 다운로드, 넥스, 유니넷, 싸이트 등등 컴퓨터언어는 우리를 당황케 할 정도다. 이것을 국어의 표의문자화 할 수 없을까? 또 漢字文化圈(한자문화권)의 韓·中·日언어는 漢字(한자)로 表記(표기)하고 自國語(자국어)로 發音(발음)하면 된다. 예컨대 東京은 한국인은 동경, 중국인은 뚱징, 일본인은 도오쿄로 읽으면 되고, 鄧小平은 등소평, 덩샤오핑, 도오쇼헤이로 각기 自國音(자국음)으로 발음하면 된다. 오늘날 United States of America를 美國(미국)으로, Great Britain을 英國(영국)으로, Thailand를 泰國(태국)으로, にっぽん(日本)을 日本(일본)으로 표기해 읽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간편하고 편리하지 않는가? 적어도 한자어문화권에서는 이렇게 표기해서 사용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 言語外(언어외)에는 그 정확한 의미를 전달할 수 없는 경우라든지 또는 그 말의 始源(시원)이 특정 국어에 속하여 일반화되어 있는 경우에는 外來語(외래어)든 內來語(내래어)든 자유롭게 使用(사용)해야 한다. 그러나 정확한 對應語(대응어)가 있고 정확한 互換語(호환어)가 있다면 구태여 제한할 것까지는 없지만 국어를 사용하는 것이 무방할 것이다. 외래어가 난무하는 것은 시대 감각도 있지만 한자어 기피로 인한 漢字造語(한자조어)의 消滅(소멸), 互換性(호환성)의 杜絶(두절), 對應語(대응어)의 缺如(결여)도 한몫하고 있는 것이다.

 

3. 漢字語(한자어)를 괄호안에 묶어 넣음으로써 독서의 흐름과 사고를 방해하고 있다. 특히 詩(시)에 있어서는 이러한 현상은 시적 정서적 흐름을 차단한다. 글은 물 흐르듯이 읽어야 한다.   국어의 한자어를 괄호안에 묶어 넣은 것은 漢字語 發音習得 敎育(한자어 발음습득 교육)은 될지언정 無益有碍(무익유애)하다. 괄호안이라는 것은 그 말이 외래어로서 철자를 찾아 辭典的 確認(사전적 확인)을 요하거나 필자가 특히 괄호내의 의미로 사용했다거나 그 말의 他語(타어)와의 關係(관계)를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4. 토씨와 조사 등을 제외한 낱말을 품사단위로 띄어씀으로써, 하나의 개념으로 속히 파악해야 될 말들이 시각적으로 스타카토식이 되어버린다. 말은 누구나 다 混同(혼동)이나 混沌(혼돈)없이 알기만 하고 이해한다면 계속 붙여쓴다한들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다.


5. 되도록 한글어(비한자어)만을 사용하고자 하는데서 말이 설명어 또는 해설어가 되어 길어지고 부정확하고 어색한 새말들이 난무하게 된다.  출구→나가는 곳, 입구→들어가는 곳, 호출→불러내기 등은 그대로라 하더라도, 출입금지→드나들지 못함, 좌회전→왼쪽으로 돌려 굴리기 등은 설명어는 될지언정 標識語(표지어)로는 부적합하다. 라틴어 없이 서구어의 조어가 어렵듯이 漢字없이 壓縮(압축)되고 簡便(간편) 正確(정확)한 造語創出(조어창출)은 불가능하다.

 

6. 使用語彙(사용어휘)의 單一化(단일화) 縮小化(축소화) 傾向(경향)

차별적이고 풍부한 어휘가 점점 줄어 들어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다. 하나의 事象(사상)을 언어로 표현하는데 케이스에 맞는 적절하고 다양한 언어가 많을수록 좋다. ‘明若觀火(명약관화)’를 사용해서 격에 맞는 적절한 경우도 있고, ‘불을 보듯 뻔하다’를 사용해서 좋을 때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의 우리 국어는 이른바 理解(이해)와 容易(용이)라는 대중문화의 특성 때문에 말 마디마다 아름다운 역사를 지닌 古事成語(고사성어)는 말할 것도 없고, 무게있고 품격있는 말들이 점점 줄어들고, 말이 너즐런하게 길어지고, 평면화되고, 잔소리가 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언어문화의 墮落(타락)을 의미한다.

 

제6장 國語(한글어)의 게토化 現象

 

       - 文化의 墮落

 

特殊(특수)한 社會(사회)에서만 통하는 언어는 게토화(ghettoization)할 것이다. 표의기호로 쓰면 극히 단순한 말, 예컨대 천주교에서 司牧(사목)이란 용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또 일선 본당에서 주교를 도와 성직자들이 신자들을 신앙생활의 궁극적 목표에로 이끄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하는 말로 쓰고 또 이 같은 현장에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해 出刊(출간)하는 雜誌名(잡지명)이 있는데 이말의 同音語(동음어)로는 斜目, 死目, 蛇目, 死木, 絲目, 邪目, 肆目 등이 있다. 말은 소리로만 듣는것이 아니고 눈으로 읽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한자어는 눈으로 읽어 쉽게 그 의미가 味到(미도)되거나 把握(파악)되는 言語(언어)이다. 司牧(사목)은 글자만 보아도 그 뜻을 곧 상상할 수 있는 이같은 平凡(평범)한 언어도 <사목>이라고 한글로 표기할 때에는 다른 사회에서는 무슨 말인지 알수 없게 된다. 비뚤어진 눈인지, 죽을 눈인지, 뱀눈알인지, 죽은 나무인지, 실매듭인지, 알 수가 없게 된다.

 

<대전은 볼만했다>고 했을 때 무슨 말인지 모른다. 대전은 垈田인지 大戰인지 對戰인지 大田인지 大典인지, 이 말 자체로는 말이 쓰이는 그때의 時空(시공)과 狀況(상황)을 제거하면 결국 다툼 밖에는 나올 것이 없다. <학력을 모르겠다>고 했을 때 학력은 참으로 모르게 된다. 학력을 가지고는 學力인지 學歷인지 學曆인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예는 不知其數(부지기수) 하다. 여기에 音聲言語(음성언어)의 한계가 있고 文字言語(문자언어)의 개념전달의 안전성과 정확성과 신속성이 있다. 한자어를 괄호안에 묶으라는 것은 표의기호로서의 한자어가 우리 국어가 아니라는 착각과 표음주의자들의 국어의 본질 이해에 대한 認識(인식)의 輕薄(경박)에서 나온 것이다.  

 

또한 동일국가의 언어권내에서도 동일한 의미문자가 사전의 의미로 쓰이지 않고 A사회에서 쓰는 말과 B사회에서 쓰는 말이 전혀 달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될 수도 있다. 또한 崔萬里(최만리)가 諺文創制反對 上疏文 末尾(언문창제반대 상소문 말미)에서 念慮(염려)한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즉 諺文(한글)만을 專習(전습)하게 되면 吏員(이원=官吏:관리)들이 이것만으로 벼슬(공직취임)하게 되어 그것으로 만족할지 몰라도 훗날에는 文字(漢字)를 아는 이가 적어져 聖賢之文字(古典)를 모르게 되어 사리판단에 어둡게된다30)는 말이 수긍된다. 이것은 곧 문화의 타락이다.

 

… 若行諺文則爲吏者. 專習諺文. 不顧學問.  文字吏員岐而爲二. 苟爲吏者以諺文而宦達. 則後進皆見其如此也. 以爲二十八字諺文. 足以立身於世. 何須苦心勞思. 窮性理之學哉. 如此則數十年之後.  知文字者必少. 雖能以諺文而施於吏事. 不知聖賢之文字. 則不學墻而. 昧於事理之是非 …

(世宗實錄 卷一 百三十九張 b.)

 

음성언어로 이해된 것만을 쓰려는 경향은 결국 의미의 단일화, 어휘의 축소화·저속화 경향을 가져오고 나아가 言語生活(언어생활)을 萎縮(위축)하게 하고 언어를 平準化(평준화)하여 이로 인해 言語(언어)의 수준은 낮아지고 正確性(정확성)이 缺如(결여)되고 다툼이 加重(가중)될 것이다.

 

깔쌈하다(=멋져보이다), 다리깐다(=둘이서 싸우다), 뽀리다(=훔치다), 야리까다(=담배 피우다), 에끼(=애인) 등등 최근 PC통신과 인터넷 등이 이같은 게토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부적같은 은어가 퍼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를 그대로 방치한다면 앞으로 그 같은 게토화 低級化(저급화), 俗化(속화)는 더욱 급진전될 것이다. 이 결과 言語槪念(언어개념)을 매개로 追求(추구)하는 學問(학문)의 自由(자유)로운 表現(표현)이 제약을 받고 그것으로 인해 창의와 이해의 걸림돌이 되고 때로는 부득이 불필요한 외래어의 차용현상도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이다.       

 

제7장 앞으로의 課題

 

한마디로 국가의 國語政策(국어정책)에 根本的(근본적)이고 決定的(결정적)인 變化(변화)가 시급하다. 敎育部(교육부)는 漢字語(한자어)와 한글어의 發展(발전) 그리고 외래전문어의 정확한  국어화 등 과제는 많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근 반세기 동안 글을 읽되, 글을 모르는 文明(문명)의 文盲(문맹)을 만들어온 한글專用法을 하루바삐 개정하여 한글어와 한자어가 調和(조화)있게 混用(혼용)되도록 해야할 것이다. 이것이 늦으면 늦을수록 우리는 文化(문화)의 限界(한계)에 부딪쳐 墮落(타락)하거나 低級文化(저급문화)의 水準(수준)에 머무르게 될 것이고 大衆(대중)의 白痴化(백치화)는 促進(촉진)될 것이다.


이 일이 成就(성취)되면 비로소 國語(국어)의 多樣(다양)하고 깊고 넓고 豊饒(풍요)롭고 健全(건전)한 發展(발전)이 올 것이고 한국어는 자랑할 만한 아름다운 언어가 될 것이다.

 

다음으로 漢字文化圈(한자문화권) 3국(韓·中·日)은 하루 속히 共通共用漢字(공통공용한자)를 韓·中·日의 言語政策(언어정책)으로 정리하고 槪念(개념)의 互換性(호환성)을 높여야 한다. 이 같은 시도의 성과가 빠를수록 國益(국익)에 도움이 되고 韓·中·日의 言語文化的(언어문화적) 접근과 상호이해가 보다 증진될 것이다.

 

또한 槪念的 思考(개념적 사고)의 정확 신속을 위해 국어의 띄어쓰기를 종전의 單語多分割式(단어다분할식)에서 文章(문장)을 중심으로 한 意味單位(의미단위)로 그리고 文字(문자)는 目讀(목독) 또는 心讀(심독)만 하는 것이 아니라 音讀(음독), 聲讀(성독), 또는 朗讀(낭독)하는 것이기 때문에 때로는 音韻的(음운적) 强調的(강조적) 情緖的(정서적) 自由(자유)를 賦與(부여)하여 言語(언어)의 生動感(생동감)을 살려야 할 것이다. 부적 같고, 암호 같은 한글세대의 컴퓨터 言語(언어)를 하루 속히 정화하여, 이 목적에 適合(적합)하도록 再整理(재정리) 再整頓(재정돈)하여야 할 것이다.

 

漢字語 敎育과 外來語

 

60년대 들어서 漢字는 落後(낙후)되고 쓸모 없는 문자로 인식되어 국어 교육에서 忽待(홀대) 받았다. 그 결과 우리말의 반 수 넘게 차지하는 漢字語들이 점차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사라지고 있다. 분명 우리말인데 그 뜻을 아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반드시 알아야 할 基礎 語彙(기초 어휘)마저 정확한 의미와는 달리 엉뚱하게 사용하는 예들을 우리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렇게 없어지는 漢字語들을 대신해서 토박이 말들이 새로 발굴되고 다듬어져 순수하고 멋스러운 우리말로 대체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의 틈새를 비집고 생겨나는 말들 가운데 토박이말은 극히 소수이고 대부분은 國籍(국적)을 알 수 없는 외래어들이나 우리말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新造語(신조어)들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外來語(외래어)와 新造語(신조어)가 범람하는 걸까?

 

97년에 國立國語硏究院(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갑오경장 이후 우리의 현대시 10,886편을 대상으로 여기에 쓰인 말들 가운데 辭典(사전)에 올라 있지 않은 단어들을 現代的(현대적)인 時點(시점)에 생성된 新語(신어)로 개념짓고 조사한 적이 있었다. 조사된 신어 1,166項目(항목)을 시대별로 분류하고 어휘 특성별로 분석하면서 그 意外(의외)의 결과에 놀랐던 적이 있었다. 한문에 눌리고 事大主義(사대주의)에 젖어 우리 토박이 말들은 숨도 못 쉴 거라고 생각하던 1930년대와 1940년대의 현대시에서는 사투리를 포함한 토박이말의 쓰임이 각각 38.6%, 39.7%에 달하였으나 終戰(종전) 후 물밀듯이 들어오는 외래 문화에 모든 가치를 부여하던 50년대, 60년대, 70년대에는 고작 9.0%, 7.0%, 8.3% 정도의 낮은 사용 頻度(빈도)를 보였고, 우리 것의 소중함에 눈을 뜨는 80년대와 90년대 ─엄밀히 말하면 1994년까지─ 詩(시)에서는 비로소 16.2%와 13.0%로 토박이말의 사용 빈도가 조금 높아지고 있었다.

 

이 統計 數字(통계 숫자)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漢文에 억눌리고 事大主義(사대주의)에 찌들어 우리말의 소중함을 모르리라 생각했던 30년대와 40년대 현대시에 나타난 고유한 말들은 40% 이상되는데 한글 전용이 주요 어문 정책의 기조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는 광복 이후 현대시에서 한자어와 외래어의 빈도가 높아지는 이 수치를 접하면서 우리말을 사랑하는 방법에 뭔가 잘못이 있지 않은지 곰곰히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10,886편의 시에서 모아진 1,166개의 신어만을 대상으로 통계낸 결과만으로 어떤 결론에 성급하게 도달한다는 것은 무모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던 사실은 국한문을 혼용하던 30년대와 40년대의 사람들이 漢字와 漢文의 사용에 억눌렸다 하더라도 우리말을 외면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 시대는 漢字의 중요성을 논하고 한문을 가까이하는 사람들은 마치 ‘우리말과 글의 사랑’을 외면하는 사람으로 몰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대적 풍조에 비추어 볼 때 30년대와 40년대의 현대시는 지금의 기준으로 보아 정말 뜻밖이었다. 이들 시에서 토박이 말의 사용이 낮아야 하는데 실제는 그와 정반대였다. 오히려 지금은 그 의미마저 희미해져 버린 토박이말들로 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아름답게 그 情緖(정서)를 수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말과 글을 사랑하자고 목청 높이고 있는 오늘날 우리들의 국어 생활을 잠깐이라도 들여다보면 깜짝 놀랄 만큼 新造語(신조어)와 外來語(외래어)로 채워져 있음을 알게 된다. 외래어란 외국에서 새로 文物(문물)이 들어올 때 함께 들어와 쓰이는 말들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문물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어서 함께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된다. 이들은 비록 처음에는 外國語(외국어)로서 들어왔으나 우리말 체계에 흡수되면서 同化(동화)되어 國語化(국어화)의 과정을 밟게 된다. ‘담배’나 ‘구두’가 국어처럼 쓰이는 외래어들이고, ‘남포’와 ‘라디오’가 우리말의 音韻 體系(음운체계)에 완전히 同化(동화)되어 외국어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린 말들이다. 이들은 딱히 대상을 가리킬 말을 국어에서 찾지 못해서 함께 들어와 사용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요즈음 일상 생활에서 넘쳐나는 외래어들은 이런 외래어적인 본래 특성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대부분 꼭 代替(대체)할 말이 없어서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한자로 쓰였던 말들이나 한자로 쓸 수 있는 말들을 제치고 들어온 말들이다. ‘自動(자동)’이란 말 대신 쓰이는 ‘오토’가 그렇고, ‘機械(기계)’라는 말을 대신하는 ‘머신’이 그렇다. 특히 영어에서 들어온 외래어들이 그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얼마 전 신문에서 세종문화회관의 ‘會館(회관)’을 ‘센터’로 바꾸겠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회관이란 명칭에 문화 관련 전문성이 결여되어 있고, 일제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 점이 이유였다. ‘회관’이란 명칭이 냉면이나 갈비집의 이름에서도 쓰이기 때문에 ‘회관’에 문화 관련 전문성이 결여되었다면 ‘카센터’나 ‘회센터’ ‘농수산물유통센터’의 ‘센터’에서 도대체 어떤 문화성이 있다는 말인지 묻고 싶었다. 이런 점을 모르지 않을 분들이 굳이 ‘회관’ 대신 ‘센터’를 선호했던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 더욱이 ‘會館(회관)’이 일제의 ‘府民館(부민관)’에서 시작된 말이라는 데에 이르러서는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논리라면 開化期(개화기) 이후에 들어온 한자어들 가운데 일본어와 겹쳐지는 한자어들이 다 日帝(일제)의 殘滓(잔재)가 되는데, ‘自動車(자동차)’, ‘會社(회사)’ 등이 일제 殘滓(잔재)라는 데에 누구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漢字語를 忽待(홀대)하고, 몰아내어 外來語로 그 자리를 채우려는 경향은 사실 어제, 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漢字語는 우리말이 아니라는 뿌리깊은 생각과 ‘문화적 허영심’이 어우러져 나타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한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獻身(헌신)했던 先覺者(선각자)들의 本意(본의)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다시 생각해 보게된다. 그분들은 ‘自動(자동)’이나 ‘機械(기계)’란 말 대신에 ‘오토’나 ‘머신’이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이런 현실을 기대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말에서 나름대로 문화 관련 명칭으로 생명을 얻어가는 ‘會館(회관)’을 몰아내고 ‘센터’로 바꾸기를 바랐던 바는 더더욱 아니었을 것이다. 그분들이 한글 사용에 보인 熱情(열정)은 漢文이나 漢字 뒤에 가려진 지나친 形式主義(형식주의)를 경계하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여야 할 시대적 當爲性(당위성)을 직시했던 결과라고 생각한다. 漢字와 漢文을 배우기 위해 보내야 하는 그 오랜 시간과 정열이 새로운 학문 체계와 기술의 습득으로 昇華(승화)되어야 하는 시대적 요구를 先覺(선각)했던 것이다.

 

물론 오늘날 이렇게 외래어와 新造語(신조어)가 氾濫(범람)하는 지금의 상황을 전적으로 한글 專用(전용)만의 책임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날 우리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한자어들이 점차 우리들의 日常(일상)에서 잊혀지고, 초보적인 어휘마저 그 정확한 의미가 혼동되는 현실은 漢字와 漢文을 소홀히 하고 교육에서 홀대한 결과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렇게 없어지거나 혼동되는 漢字語들을 대신해서 급속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말들은 외래어들이나 우리말의 造語法(조어법)에서 벗어난 신조어들이다. ‘우리말을 사랑하자’는 口號(구호)에 편승해서 저질러진 ‘한자어 몰아내기 운동’이 결국 외래어들을 우리 일상 생활 속에 급속히 퍼뜨리는 데 일조를 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외래어의 남용을 지적하려면 스스로 우리가 국어에 저질러온 이점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와 함께 우리말에서 반 수 넘게 차지하는 漢字語가 지금처럼 위기에 빠진 것은 국어 교육에서 漢字 교육을 소홀히 한 데에 원인이 있다. 漢文과 漢字語 교육은 漢字를 철저히 가르치는 데서 출발한다. 지금이라도 우리 국어에서 漢字 교육을 강화한다면 늦었다고만 할 수 없다.

 

國立國語硏究院(국립국어연구원)에서는 漢字 사용 실태 조사를 이년 동안 준비하여 얼마 전에 마무리한 적이 있다. 현행 漢文 교육용 기초 漢字가 漢文이나 국어 교육에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었기에 객관적인 빈도 조사를 통해 가장 많이 쓰였던 漢字가 어떤 것들인지, 교육에 필요한 漢字의 범위가 얼마인지를 알아 보기 위해서였다. 서울大學校 中文學科(중문학과)의 許性道 敎授(허성도 교수)께서 漢文 典籍(전적)에서 구백오십만 자를 電算的(전산적)으로 처리하여 漢文 敎育에 필요한 漢字의 빈도 통계를 내었고, 高麗大學校(고려대학교) 國文學科(국문학과)의 金興圭 敎授(김흥규 교수)께서 팔천오백만 語節(어절)의 漢字語를 電算的(전산적)으로 처리하여 현대 국어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한자의 빈도를 조사한 것이었다.

 

그 결과, 학습 내용의 95% 정도의 이해를 위해서는 古文眞寶(고문진보)를 비롯한 敎材類(교재류)에서는 2,038자, 諸子集成(제자집성)에서는 1,809자가, 十三經(13경)에서는 1,791자가, 四書(4서)는 이보다 훨씬 적어서 1,080자가 필요하였다. 韓中 總合 資料(한중 총합 자료)라 하더라도 漢字 2,000자 정도면 95.59%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결과만으로 볼 때 현행 한문 교육용 기초 한자 1,800자의 字數(자수)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니고 있겠으나 이 가운데 대략 이삼백 자는 漢籍(한적)에서 낮은 빈도를 보이므로 한문 교육이라는 본래의 목적에 맞지 않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나 그중에도 이백여 자가 현대 문헌에서 조사된 한자의 빈도에서 上位를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敎育用 基礎 漢字 再調整案(교육용 기초 한자 재조정안)에는 순수하게 한문 교육을 위한 漢字 1,800자와 국어 생활에서 필요한 漢字 200자로 구분하였고, 2,000자의 교육용 基礎漢字 再調整案을 교육부에 넘겨 검토를 기다리고 있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말 사랑을 實踐(실천)하는 하나의 방법으로 학교의 국어 교육에서 漢字 교육이 강화되어야 한다. 初等學校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것만큼 국어의 올바른 이해를 위해 漢字와 漢文도 가르쳐야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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