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산 정약용이 자식에게 남긴 유산 ◈
又示二子家誡(두아들에게 주는 가르침)
내가 벼슬하여 너희들에게 물려줄 밭뙈기 정도도 장만하지 못했으니
오직 정신적인 부적 두 자字를 마음에 지녀 잘 살고 ,
가난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이제 너희에게 물려주겠다.
너희들은 너무 야박하다 하지 마라.
한 글자는 근(勤)이고 한 글자는 검(儉)이다.
이 두 즐자는 좋은 밭이나 기름진 땅보다도 나은 것이니
일생 동안 써도 다 닳지 않을 것이다.
부지런함이란 무얼 뜻하겠는가!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말며,
아침때 할 일을 저녁때로 미루지 말며,
맑은 날에 해야 할 일을 비오는 날까지 끌지 말도록 하고
비오는 날 해야 할 일을 맑은 날까지 끌지 말아야 한다.
검(儉)이란 무엇일까?
의복이란 몸을 가리기만 하면 되는 것인데
고운 비단으로 된 옷이야 조금이라도 해지면
세상에서 볼품없는 것이 되어버리지만
텁텁하고 값싼 옷감으로 된 옷은 약간 해진다 해도
볼품이 없어지지 않는다.
한벌의 옷을 만들 때
앞으로 계속 오래 입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며
곱고 아름답게만 만들어 빨리 해지게 해서는 안된다.
음식이란 목숨만 이어가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맛있는 고기나 생선이라도 입안으로 들어가면
더러운 물건이 되어버린다.
삼키기도 전에 벌써 사람들은 싫어한다.
인간이 이 세상에서 귀하다고 하는 것은 정성 때문이니
전혀 속임이 있어서는 안된다.
단 한가지 속일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 입과 입술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맛있게 생각하며 입과 입술을 속여서
잠깐 동안만 지내고 보면 배고픔은 가셔서
주림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니 이러해야만 가난을 이기는 방법이 된다.
어떤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하며
맛있고 기름진 음식만을 먹으려고 애써서는 결국
변소에 가서 대변보는 일에 힘을 쓸 뿐이다.
이러한 생각은 당장에 어려운 생활처지를 극복하는
방편만이 아니라 귀하고 부유하고 복이 많은 사람이나
선비들이 집안을 다스리고 몸을 유지해가는 방법도 된다.
정약용 초상화(丁若鏞 肖像畵)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 초의 의순(傳 草衣 意恂)이 그린 절두산 순교성지 소장품(조선시대. 19세기 말. 85.0*50.0cm)으로 다산 정약용 ‘하늘을 받들어 백성을 보듬다.’ 2012년 국립중앙박물관 테마전시 중에 사진으로 담았다. 실학의 형성시기와 특성으로 실학은 사회적 혼란기에 통치 이념으로서의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주자학에 대한 반발과 때마침 중국을 통하여 유입된 서학 및 청대 실학의 영향에 의하여 당시의 학풍이 소홀히 하였던 사회의 현실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추구하고자 하는 새로운 기풍에 의해 등장했다고 볼 수 있다. 혈연, 사제, 교우관계를 통해 형성된 실학은 그 형성시기와 학문적 특성에 따라 다음의 3기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실학의 제1기인 18세기 전반의 성호학파(經世致用學派), 제2기인 18세기 후반의 북학파(利用厚生學派), 그리고 제3기는 19세기 전반의 실사구시학파(實事求是學派)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썩어가는 국가의 대들보를 새롭게 바꾸고 허물어진 주춧돌을 단단히 괴는데 평생을 바 친 다산에게 돌아온 것은 18년 동안의 유배라는 혹독한 시련이었다. 모진 고문으로 인 한 육신의 고통과 찾아오는 이 없는 유배지의 쓸쓸함을 밤을 새는 저술 작업으로 극복 한 다산이 가슴속에 붙들고 놓지 않는 말은 “한 사람만이라도 이 책의 값어치를 알아주는 것으로 족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는 법 당시의 어두운 현실은 그를 시기하고 배척하였으나 오늘날 그는 “한국학의 바다”로서 새롭게 부활하고 있다. (남양주시 문화관광과 자료) *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 이영일/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 사진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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