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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 과 사 전

사마천의 안목을 길러 미래를 대비하는 법 7가지

                        사마천의 안목을 길러 미래를 대비하는 법 7가지


 

 


 


 



위대한 역사가이자 탁월한 문장가인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의 저자입니다. 흉노족에 투항한 이릉을 변호했다는 죄목으로 한의 효무제에 의해 궁형(宮刑)을 선고받은 사마천은 그 치욕을 견뎌내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사기]의 편찬을 완성했습니다. 과거의 복잡한 사건들이 질서정연하게 기술된 [사기]는 궁정 중심의 정치적인 주제에 한하지 않고 훨씬 폭넓은 사회계층을 다루고 있어서 중국 역사서의 본보기로 일컬어지고 있습니다.


 


김원중 교수는 [청소년을 위한 사기]에서 사마천이 자신의 혼을 담아 써내려간 삶의 지혜를 들려주고 있는데, 이 중 사마천의 안목을 길러 미래를 대비하는 법 7가지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앞으로 부딪치게 될 삶의 어려움들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데 유용한 지침이 될 것입니다.


 

 


 




사마천의 안목을 길러 미래를 대비하는 법 7가지


 


 1  세 치 혀가 군사 백만 명보다 강한 법이다




조나라는 진나라에 의해 수고 한단이 포위되자 초나라에 평원군을 보내 도움을 요청하고 합종(合從)하도록 했다. 평원군은 빈객과 문하 중에서 용기와 힘이 있고 문학적 소양과 무예를 두루 갖춘 사람 스무 명과 함께 가기로 했다. 그런데 열아홉 명을 뽑고 나머지 한 명을 채우지 못하고 있을 때 문하에 있던 모수(毛遂)라는 자가 자신을 일행에 끼워달라며 스스로를 추천했다. 


 


그러자 평원군은 “대체로 현명한 선비는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과 같아서 그 끝이 금세 드러나보이는 법인데, 선생에 대해서는 아는 바도 들은 바도 없으니 이렇다할 재능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소. 그러니 함께 갈 수 없소”라고 말했다. 하지만 모수는 “저는 오늘에서야 당신의 주머니 속에 넣어달라고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저를 좀더 일찍 주머니 속에 있게 했더라면 그 끝만 드러나보이는 게 아니라 송곳 자루까지 밖으로 나왔을 겁니다”라고 단언했다.


 


결국 평원군은 모수를 일행에 합류시켰고, 모수는 초나라에 가서 합종의 약속을 받아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다시 조나라로 돌아온 평원군은 “나는 앞으로 감히 다시는 인물을 평가하지 않겠다. 내가 지금까지 선비를 고르면서 스스로 천하의 선비를 잃은 적이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모수의 경우에는 큰 실수를 했다. 모수는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위대하게 만들었다. 그의 세 치 혀는 백만 명의 군사들보다도 강했다”며 모수를 상객(上客)으로 삼았다.


 


  주머니 속의 송곳을 뜻하는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고사성어의 연원이 되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 모수는 수천의 식객 중에서 눈길을 받지 못하고 세월을 보냈다. 그런 그가 갑자기 자신이 송곳 끝이 아니라 자루라고 말하자 평원군은 아연실색하고 식객들은 다 비웃었지만, 모수가 백만 대군이 하지 못한 일을 성사시키고 돌아오자 평원군은 더 이상 함부로 인재를 뽑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다. 이렇듯 사람의 능력은 때를 만나면 반드시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다.


 


 

 


 


 2  말 타고 천하를 얻었다 하여 말 타고 천하를 다스릴 수는 없다




육생(陸生)은 황제 앞에 나아가 말할 때마다 <시경>과 <상서>(尙書)를 인용했다. 그러자 한고조는 육생을 꾸짖으며 “나는 말등에 올라타 천하를 얻었소. 어찌 시경과 상서 따위를 쓰겠소!”라고 말했다. 그러자 육생이 말했다.


 


”말등에 올라타 천하를 얻었다고 해서 어찌 말등에 올라타 천하를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옛날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무력으로 정권을 얻었지만 민심에 순응하여 나라를 지켰습니다. 이와 같이 문(文)과 무(武)를 함께 쓰는 것이 나라를 길이 보존하는 방법입니다. 옛날 오나라 왕 부차와 지백은 무력을 지나치게 쓴 탓에 멸망했고, 진나라는 형법만을 쓰고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조씨는 멸망한 것입니다. 만일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인의를 행하고 엣 성인을 본받았다면 폐하께서 어떻게 천하를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


 


  무가 없는 문은 유약하고, 문이 없는 무는 사회를 경직되게 하고 고립을 자초하게 마련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한고조는 근시안적으로 무력이 나라를 다질 비책이라고 생각했지만, 육생은 유학으로 나라의 기초예법 질서를 확고히 구축해야만 무력과 함께 효과를 낼 수 있다고 간언한 것이다. 결국 진나라가 20년도 못 되어 망한 반면 한나라가 400년의 반석을 다진 것은 이러한 차이 때문이다. 한나라는 유학을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하면서 수성의 기반을 탄탄히 했던 것이다.


 


 

 


 


 3  재앙의 싹은 미리 잘라버려야 한다




원앙은 언제나 일반적인 원칙에 근거해서 말했으나 비분강개하는 경우도 있었다. 환관 조동이 문제의 총애를 받아 원앙을 해치려 하므로 원앙은 이것을 걱정했다. 원앙의 조카 종이 상시기(황제를 모시는 기사)가 되어 황제를 곁에서 모셨는데, 그가 황제를 비방하는 조동을 저지시켜 달라고 부탁했다.


 


어느 날 원앙은 효문제가 나들이하는데 조동이 황제의 수레에 함께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수레 앞으로 나가 엎드려 “신이 듣건대 천자의 수레를 함께 탈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천하의 호걸과 영웅이라고 합니다. 지금 한나라에 인물이 부족하다고는 하나, 폐하께서는 어찌 궁형을 받은 자(환관)와 함께 수레를 타십니까?”라고 말했다. 원앙의 말에 황제는 미소를 머금고 조동을 내리도록 했고 조동은 울면서 수레에서 내렸다.


 


  원앙은 강직한 성품으로 간언을 일삼았던 인물이다. 그의 간언은 황제의 귀에 거슬리는 경우가 많았으며 정치적으로 대립하는 인물들도 많았다. 당시 황제의 총애를 받던 환관 조동이 원앙을 해치려 하자 원앙은 이에 미리 대비한다. 정적을 미리 제거해서 화를 없앤 것이다. 조동은 여러 차례 황제와 수레를 함께 탈 정도로 위세를 부렸으나 결국 원앙의 간언으로 대번에 추락한다.

 

간언하는 신하가 없으면 왕은 바른길로 가지 못한다. 최고 권력자 곁에는 항상 충신보다 아첨하는 자들이 많게 마련이다. 그런 가운데에도 비판과 직언을 마다하지 않는 신하가 있고 그런 말을 받아들이는 황제가 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4  황제는 어진 마음을 지녀야 한다




황제의 증손인 고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신기하고 영묘해서 스스로 자기 이름을 말할 정도였다. 널리 베풀어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자신을 돌보지 않았다. 귀가 밝아 먼 곳의 일까지도 잘 알았고, 눈이 밝아 미세한 일까지도 잘 살폈다. 하늘의 뜻을 따랐고 백성의 절심함을 알았다. 어질면서도 위엄이 있었고 은혜로우면서도 믿음이 있었으며, 자신을 수양했으나 천하가 복종했다. 땅의 재물을 얻었으나 그것을 아껴썼고, 백성을 위로하고 가르쳐서 그들을 이롭게 이끌었다.


 


  오제란 황제, 전욱, 제곡, 요, 순 등 중국 고대의 전설에 나오는 다섯 제왕으로 사마천의 사기는 이 오제의 이야기에시 시작된다. 사마천은 오제가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서 덕을 바탕으로 했음을 강조하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정치의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여기서는 제곡이 백성들을 다스릴 때 마치 물을 대는 것처럼 평등하면서도 중심을 잡아 천하의 백성을 차등을 두지 않고 다스렸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도자에게 중요한 것은 능력뿐만 아니라 따스한 인간미다. 삼국지의 세 주인공 가운데 유비는 가진 것도 별로 없고 군사에 대해서도 아는 바가 많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리고 간언을 잘 받아들여 결국 창업에 성공했다. 


 


 

 


 


 5  사냥개와 사냥꾼의 차이




한고조 5년에 이미 항우를 죽이고 천하를 평정하자 공을 논하여 봉토를 주었다. 여러 신하들이 공을 다투었으므로 1년이 지나도록 공적 문제가 결말이 나지 않았다. 고조는 소하가 가장 공이 크다고 여겨 그를 천후로 봉했고 식읍도 가장 많이 주었다. 그러자 공신들은 “신들은 몸에는 갑옷을 입었고 손에는 예리한 창칼을 잡고 수십, 수백 번을 싸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소하에게 어찌 땀흘린 공로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는 한갓 글과 붓을 잡고 의론했을 뿐 전쟁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저희보다 등급이 높으니 어찌된 까닭입니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고조는 이렇게 말했다.


 


”그대들은 사냥과 사냥개에 대해 아시오. 사냥에서 들짐승과 토끼를 쫓아가 죽이는 것은 사냥개이지만, 개의 줄을 놓아 짐승이 있는 곳을 알려주는 것은 사람이오. 지금 여러분들은 한갓 들짐승에게만 달려갈 수 있는 자들뿐이니 공로는 마치 사냥개와 같소. 소하로 말하면 개의 줄을 놓아 방향을 알려주니 공로는 사냥꾼과 같소.”


 


  소하는 패현 사람으로 한나라 초기의 대신인데 “성공해도 소하요. 실패해도 소하”(모든 것이 소하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라는 말이 있을 만큼 1등공신이었다. 소하는 병들어 죽게 되자 자신의 후임으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조참을 추천할 만큼 남다른 사람이었다.


 


 6  쥐들을 보고 인생의 지혜를 얻다




초나라 이사는 젊을 때 군에서 지위가 낮은 관리로 있었는데, 관청 변소의 쥐들이 더러운 것을 먹다가 사람이나 개가 가까이 가면 자주 놀라서 무서워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이사가 창고 안으로 들어가니, 거기에 있는 쥐들은 쌓아놓은 곡식을 먹으며 큰 집에 살아서 그런지 사람이나 개를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사는 “사람이 어질다거나 못났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쥐와 같아서 자신이 처해 있는 곳에 달려 있을 뿐이구나”하고 탄식했다.


 


  똑같은 사물을 보아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하찮은 동물로부터 인간사회의 진실을 읽어내는 예리한 안목이 돋보이는 장면이다. 하급관리로 머물러 있던 이사는 자신의 조국 초나라를 떠나 전통과 문화가 전혀 다른 진나라로 들어간다. 이사는 이런 결단력으로 자신을 축출하려는 진나라 토착세력들의 반대를 잠재우고 개혁을 단행하면서 통일을 앞당기고 훗날 중국의 기초를 닦게 된다.


 


 

 



 


 7  효를 좇다가 불충하다




초나라 소와의 재상인 석사는 건실하고 정직하며 청렴해서 아첨하거나 권세를 두려워하는 일이 없었다. 하루는 현을 순시하는 도중에 살인사건을 만나게 되었다. 재상이 범인을 찾아가보니 바로 자기 아버지였다. 재상은 아버지를 놓아주고 돌아와 자진해서 옥게 갇힌 뒤 사람을 시켜 왕에게 “살인자는 저의 아버지입니다. 아버지는 처형해서 정치를 바로세우는 것은 불효이고, 법을 무시하고 죄를 용서한 것은 불충입니다. 저의 죄는 죽어 마땅합니다”라고 아뢰게 했다.


 


왕이 “범인을 뒤쫓아갔지만 잡지 못한 것이니 벌을 받는다는 것은 옳지 않고. 그대는 전과 다름 없이 맡은 일에 힘쓰시오”라고 말하자 석사는 “자기 아버지에게 사사로운 정을 두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고, 군주의 법을 지키고 받들지 않으면 충신이 아닙니다. 왕께서 신의 죄를 용서하는 것은 임금의 은혜이지만, 벌을 받아 죽는 것은 신하로서의 직분입니다”라며 왕의 명령을 듣지 않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법 집행의 엄정성이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더구나 부자지간에는 법 이전에 혈연이라는 초월적 힘이 존재하는 법이다. 그럼에도 법이란 사사로워서는 안 된다는 냉철한 판단을 한 석사의 처신은 오늘날에도 본받을 만하다. 죄를 정당하게 처벌하면 백성들은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을 집행하는 자는 더욱 서릿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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