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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指導者. 大望

10.26 그때 그사람과 그장소..지금은?

10.26 그때 그사람과 그 장소...지금은 ?

 

31년전인 1979년 10월26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안가에서 유신(唯新)정권의

최고  실세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고(故)박정희(朴正熙)대통령은 김계원(金

桂元)비서실장.   차지철(車智澈)경호실장.  김재규(金載圭)중앙정보부장이

배석한  가운데 술잔을 기울였다. 여대생가수 심수봉과 모델 신재순이 자리

 

를  함께 했다.  오후7시40분쯤  잠깐 자리를 떳다가돌아온 김재규가 갑자기

총을 뽑아들고  박대통령 가슴을 향해 쐈다. 이 순간을 기점으로 한국현대사

는  격랑에 휩싸이게됐다. 역사의 한 분수령이었던 그날부터 31년이 지난 지

금 그때 그 사람들과  그 장소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때 그 사람들

 

박대통령이  시해된 10.26사건을  촉발한  직접적 계기는 김재규와 차지철간

의  권력 암투 때문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다. 실제로 김재규가 현장에서 가장

먼저  쏜것도  차지철이었다. 차지철은 김재규의 총탄에 맞고 화장실로 도망

갔다가  다시 방으로  돌아 왔다가  김재규에게 배에 총탄을  한방더 맞았다.

 

차지철은  중앙정보부  소속 경비대원인 김태원이 쏜 총에 머리를 맞고 죽었

다고  알려졌다. 김재규는 차지철뿐아니라박대통령도 노렸다.김재규가 총을

쏘자  박대통령은  "뭤들하는거야!"  라고 소리를  질렀다.김재규는 정좌한채

눈을  감은  박대통령에게  총을 쐈다.긴박한순간 총이고장나 뛰어나온 김재

 

규는  박선호로부터 38구경  리볼버  5연발 권총을  낚아채고  돌아와 쓰러진

대통령의 머리50cm까지  총구를  들이대고  방아쇠를 당겼다.사건직후 그는

안가의  다른곳에서  식사중이던 정승화육군참모총장을 동반해 용산 육군본

부로  가서  사태를 장악하려 했지만 뒤늦게 도착한 김계원 비서실장이 김재

 

규가  범인이라고 정총장에게 전달했다.김재규는 그자리에서 체포됐고 이듬

해  5월  대통령   시해  혐의등  으로 서울 구치소 에서 교수형에  쳐해 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쓰러트린 10.26사태의 총성은 그의 주변인물들 삶까지 송두리채 바꿔놓았다.

사진은 1997년당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과 그의부하 박선호.

 

현장에 있던  심수봉과 신재순의 운명도 순탄치 않았다. 심수봉은 당시 계엄사에서

조사를 받다가  서울 한남동에 있는정신병원으로 끌려가한달간 감금당했다고 회상

했다. 1981년까지 방송출연을  금지 당하기도 했다.신재순도 같이 조사를 받고 은둔

에 가까운   생활을 하다  재미교포와  결혼해 미국으로 떠났다. 10.26최대 수혜자는

 

전두환  전대통령이었다.  당시 국군보안사령관으로 있던 그는 시해사건진상조사를

담당한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을 맡아 권력의 무대를 장악했다.주도권을 잡은

그는 재빠르게 움직였다. 그해 12월12일 대통령 암살장소에 있었다는 이유로 계엄사

령관   정승화를 체포하면서  모든  권력을 손아귀에 넣었다. 최규화국무총리가 대통

 

령 권한대행을 거쳐 통일주체국민회의 선출대통령으로취임했으나 전두환은 1980년

8월  최대통령을  하야시켰다.전두환은 이어육군대장으로 예편한뒤 장충체육관에소

집된  통일주체국민회의에  대통령선거  단일후보로나서 제 11대 대통령자리를 차지

했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10.26의 자리

 

사건발생지인 궁정동 안가는 청와대 남서쪽 효자로와 창의문 교차로의 공원자리에

있었다.김영삼(金泳三)대통령 취임 넉달뒤인 1993년 7월안가는 헐리고 무궁화공원

이 됐다. 총을 맞은 박대통령이 실려갔던 경북궁 동쪽 서울지구병원은 31년이 지난

지금 이전논의가한창이다.2009년초 이명박(李明博)대통령은 이 병원과 옛기무사부

지에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와대와 5분거리인 대통

령 전용병원이라는 점 때문에 경호처가 난색을 보였다.

 

 

서울특별시 중구 충무로에서 동대문구 용두동까지이어지는 삼일고가도로도 역사의

장소가 됐다. 박대통령을 암살한 김재규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함께 삼일고가도

로에 들어섰다.

 

남산중앙정보부로 갈것인가.용산 육군본부로 갈것인가.고민하던 김재규는 병력배치

를 하려면 육군본부가 좋겠다는 정총장의 말을 따랐다. 역사의 갈림길이된 삼일고가

도로는 2003년청계천 복원을 앞두고 건설된지 33년만에 모두 헐렸다.

 

당시  김재규가 중앙정보부로 향했다면 사태가 바뀌었을 거라는 분석도 나온다.중앙

정보부장  김재규가 남산 정보부 건물로 가서 지휘소를 차리고 정부요인들을 소집했

다면 손쉽게 사태를 장악 할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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