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
지중해 코르시카섬 아작시오에서 출생 카를로 보나파르테와 테타치아
라몰리노.사이에서 태어 났다. 프랑스 혁명의 사회적 격동기후의 안정
에 편승하여 제 1제정을 건설하였다.
군사정치적 천재로서 세계사상 알렉산드로스 대왕. 카이사르와 비견된
다. 아버지가 지도자 파올리를 따라 프랑스에 대한 코르시카 독립 운동
에 가담하나.싸움에 진뒤에는 도리어 프랑스총독에게 접근하여 귀족의
대우를 받았다.
1784년 파리 육군사관학교에 입학.임관뒤 포병소위로 지방연대에 부임
하였다.1789년 프랑스 혁명때 코르시카로 귀향하여 파올리 아래서 코르
시카 국민군 부사령관에취임하였다.
프랑스 육군은 3회에 걸친 군대이탈과 2중군적에 대해 휴직을 명하였다
1796년 3월 바라스의 정부(情婦)이자 사교계의 꽃이던 조세핀과 결혼.총
재 정부로부터 이탈리아군을 격파하여 5월에 밀라노에 입성 1797년 2월
에는 만토바를 점령하는 전과를 올렸다.
그의 명성은 프랑스에서도 한층 높아졌다. 하루3시간만 잔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비서 브리센에 의하면 건강에 항상 신경을 써서 하루8시간은
잤다고 한다.1799년 11월9일(브뤼메르18일)군을 동원 500인회를 해산시
켜 원로원으로부터 제1대통령으로 임명되고 군사독재가 시작되었다.
그는 평생 코르시카인의 거칠음 솔직함을 잃지않아.농민출신 사병들로
부터 신뢰를 받고 있었으나 역사적 영웅으로 보면 인간성을 무시하고
도덕성이 결여된 행동의 주인공이 었다.1800년 알프스를 넘어 마랭고
에서 전승을 이룩 하였다. 1804년 12월인민투표로 황제에 즉위하여 제
1 제정을 폈다.
즉위소식을 들은 L베토벤이(영웅 고향곡)의 악보앞에서 펜을 던지고 인
민의 주권자도 역시 속물이었다고 한탄 하였다. 영국을 최대의 적으로
간주하던 그는 즉위하자 곧 상륙작전을 계획하였다.
1805년 가을 프랑스 함대는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H.넬슨의 영국해군에
다시 격파되어 그의 웅도(雄圖)는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그러나 같은
해 12월 아우스터티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러시아군을 꺽은이래 프랑
스 육군의 전 유럽을 제압하여 위광을 전 세계에 떨쳤다.
1809년 조세핀과 이혼.이듬해 오스트리아 황녀(皇女)마리루우즈와재혼
하였다.1812년 러시아원정에 실패하면서 운세도 기울어져 1814년 영국.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군에의해 파리를 점령당하고 그는 엘바섬
으로 유배되었다.1815년 3월다시 파리로 들어가 황제(皇帝)에 즉위하였
으나 6월 워털루 전투에서 패하여 영국에 항복하였다. 그뒤 대서양의
세인트 벨레나 섬에 유배. 그곳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