王昭君(왕소군)을 두고 지은 詩(시) 가운데 있는 글귀다.
왕소군은 前漢(전한) 元帝(원제)의 宮女(궁녀)로 이름은 嬙(장)이었고,
소군은 그의 字(자)였다. 그녀는 絶世(절세)의 美人(미인)이었으나
흉노와의 和親(화친)정책에 의해 흉노왕에게 시집을 가게 된 不運(불운)한 여자였다.
그 여자를 두고 지은 동방규의 시에 이러한 구절이 나온다.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이 시구에서 ‘秋來不似秋(추래불사추)’,
‘冬來不似冬(동래불사동)’라는 말이 나왔다. 왕소군은 중국의 4대미녀중 한명이다.
여수 화태도에 활짝핀 매화와 배추꽃(2020.2.16)
올해도 꽃샘추위가 연례 행사처럼 찾아 왔습니다. 더우기 올해에는 코로나 19(코로나 바이러스, 우한 폐렴)와 연일 계속되는 미세먼지로 외출마져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이만때쯤이면 생각나는 것은 중국 4대 미인 왕소군 (王昭君,생졸연대 미상)의 슬픈 사연을 노래한 당나라 시인 이백(李白701~762))의 시와 동방규(東方叫 생졸연대 미상)의 소군원(昭君怨)이란 시 입니다.
이 시의 유래는, 기원 전 200여 년 전 장량과 한신의 도움으로 항우를 꺾고 제위에 오른 유방에게 두통거리가 있었는데 바로 북쪽의 유목민족 흉노였습니다. 그들은 가을겆이가 한창일 때면 국경을 넘어와 노략질을 일삼자 마침내 한 고조 유방은 32만 대군을 직접 이끌고 흉노족 토벌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게릴라 전법으로 치고 빠지는 흉노의 기마병을 당해낼 수가 없었고 결국 평성의 백등산에 포위되어 고전하다 가까스로 후퇴했습니다. 한 고조는 어쩔 수 없이 흉노와 불평등조약을 맺었는데, 그 조약 중 하나가 '한나라 공주를 흉노의 왕에게 시집보낸다.'는 항목도 들어 있었습니다. 그 뒤 정략적인 이유로 흉노왕에게 시집가는 공주를 화번공주(花番公主)라 했습니다. 한나라 왕은 후궁 중에서 화번공주를 고르거나 신하의 딸을 양녀로 삼아 흉노왕에게 보냈습니다. 기원 전 33년, 한나라 11대 왕인 원제시대의 일입니다. 드디어 흉노의 왕인 호안야가 화번공주를 요구했습니다. 당시 원제에게는 수 천명의 후궁이 있었는데 원제는 그 후궁을 일일히 기억할 수 없어 화공으로 하여금 초상화를 그려 오도록 해 그 중 아름다운 여인을 골라 잠자리를 같이 하기가 일쑤였습니다. 원제는 화공이 그려 온 초상화 중 가장 추하게 생긴 여인을 골라 흉노왕에게 시집 보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원제는 흉노왕에게 보내야 할 화번공주로 선정된 여인이 추한 여인이 아니고 글자 그대로 천하일색의 미인이 나타나자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다고 합니다. 바로 이 미인이 서시, 초선, 양귀비와 더불어 중국의 4대 미인으로 이름을 떨친 그 유명한 왕소군(王昭君)이었습니다.
왕소군(王昭君)은 16살의 나이에 후궁으로 궁중에 들어 왔습니다. 원제의 후궁들은 초상화가 아름답게 그려져 왕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공들에게 뇌물을 바쳤다고 합니다. 그러나 왕소군(王昭君)은 가난해 돈이 없는데다 미모에 자신을 가졌기에 화공을 찾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괘씸하게 생각한 화공은 왕소군이 왕의 선택을 받지 못하도록 일부러 얼굴을 추하게 그렸다고 합니다. 어떤 기록에는 보기 싫은 점을 얼굴에 그려 넣기도 했다고도 합니다.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미인이 흉노왕과 함께 떠나가자, 원제는 화가 치밀어 올라 왕소군의 초상화를 그린 화공 모연수를 참형에 처했습니다. 왕소군이 중국의 북쪽 변방인 흉노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황량했습니다. 민가는 물론 나무도 별로 없는 황무지를 가며 왕소군은 비파로 슬픈 마음을 달랬습니다. 하늘을 날던 기러기가 왕소군의 비파 소리를 듣고 날개짓을 못한채 땅에 떨어졌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이 때부터 왕소군(王昭君)을 '낙안(落雁)미인'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당시의 왕소군(王昭君)의 처지를 한탄하며 중국의 시성 이백(李白)은 아래와 같은 시를 남겼다고 합니다. 昭君拂玉鞍(소군불옥안)/ 上馬涕紅頰(상마체홍협)/ 今日漢宮人(금일한궁인)/ 明朝胡地妾(명조호지첩)/ 소군이 구슬안장 추어올려/ 말에 오르니 붉은 뺨에는 눈물이 흐르네/ 오늘은 한나라 궁궐의 사람인데/ 내일 아침에는 오랑캐 땅의 첩이로구나/ ㅡ이백(李白701~762)/중국의 시성, 중국, 당(唐) 흉노왕 호안야가 죽자 그 아들이 왕위에 오르며 왕소군의 미색에 홀려 아내로 삼았다는 기록도 있는데 왕소군이 아비와 아들의 아내가 된 것을 비관하여 자살했다는 기록도 있다고 합니다. 오랑캐 족에게 강제로 시집간 천하일색의 왕소군(王昭君)은 고국 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먼 이국 땅에서 쓸쓸하게 죽어갔습니다. 왕소군(王昭君)은 죽어 흉노의 땅에 묻혔는데, 겨울이 되어 흉노땅의 모든 풀이 시들어도 왕소군(王昭君)의 무덤의 풀만은 사시사철 푸르렀다 하여 그 무덤을 청총(靑塚)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중국 시인 동방규(東方虬, 생졸연대 미상)가 왕소군(王昭君)의 기구한 운명을 노래한 가사 중,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란 귀절이 오늘날까지 전 세계적으로 회자되어 유명한 싯귀로 부상했는데 그 시의 원문은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오랑캐 땅에는 꽃과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 저절로 옷의 띠가 느슨해지니/ 일부러 미모를 위해 줄이는 허리 때문이 아니라네/ ㅡ동방규(東方虬,생졸연대 미상)의 소군원(昭君 怨)에서/중국 당나라 측천무후시대 시인 올해도 변덕스러운 날씨와 우한 폐렴으로 사상 최악의 미세먼지로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인것 같습니다. 어찌 날씨와 미세먼지뿐이겠습니까 ! 풍전등화같은 위태로운 국제정세에도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정치인 그들만의 셈법에 온 나라가 혼란스럽기만 하니 이래저래 올해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인것 같습니다. (2020/2/16/일요일/흐림)
* 다움에서 가져온 이미지는 왕소군 초상화와 중국 서안에 있는 왕소군의 묘입니다. 흉노로 떠나는 왕소군 왕소군의 초상화 왕소군은 흉노로 시집가면서 직조기술, 농업기술 등 중원의 앞선 문물을 많이 가지고 갔습니다. 흉노땅에서 백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으며, 화친의 목적도 충분히 달성해서 시집간 이후 60여년간은 서로 전쟁이 없었다고 합니다. 72세에 죽어 지금의 호화호특시 교외, 바로 이 곳에 묻혔는데, 그 무덤이 항시 푸르러서 청총(靑塚)이라 부른다고 합니다. 왕소군의 묘 청총(靑塚)ㅡ 왕소군(王昭君)은 죽어 흉노의 땅에 묻혔는데, 겨울이 되어 흉노땅의 모든 풀이 시들어도 왕소군(王昭君)의 무덤의 풀만은 사시사철 푸르렀다 하여 그 무덤을 청총(靑塚)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왕소군의 석상(石像)입니다. 중국의 4대 미녀ㅡ 춘추전국 시대의 서시(西施), 전한 시대의 왕소군(王昭君), 삼국 시대의 초선(貂嬋), 당나라의 양귀비를 일컬어 중국의 4대 미녀라고 함니다. [출처] 중국 4대 미녀 왕소군(王昭君)과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얽힌 사연(事緣)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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