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 [Chuangtzu, 莊子]중국 사상가
이런 생각으로 장자에 관심을 갖고 그의 책을 펼쳐보면 약간 당혹스러움을 느낄 수도 있다. 내용의 어려움은 내버려두자. 장자는 공자와 맹자를 비판한다면서 온통 심(心), 덕(德), 성(性), 정(情)만이 아니라 성인(聖人), 제왕(帝王) 등의 개념을 그대로 사용한다. ‘사상이 다르다면 용어부터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당혹감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장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런 용어를 버젓이 썼던 것일까? 이 문제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좋다. 춘추전국시대 제자백가들은 각자 차이를 주장했지만 공통된 언어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같은 말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사용하는 용어가 같다고 해서 그 말의 의미나 맥락이 같은 것은 결코 아니다.
같은 용어의 사용은 장자와 같은 특정 사상가의 잘못이 아니다. 그저 언어 환경의 제한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제자백가는 그런 환경 속에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동시에 같은 용어 중 특정 용어는 자신만의 의미로 가다듬어 사용했다.
이를 잘 모르면 같은 말이 ‘맹자’에도 나오고 ‘장자’에도 나오니까 둘은 같은 사상을 펼친다고 단정 지을 수도 있다. ‘장자’의 일곱 번째 편명인 ‘응제왕(應帝王)’이 가장 논란이 될 만하다. 글자만 볼 경우 누가 부르기라도 하면 금방 제왕으로 나아갈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권력 지향적인 용어는 분명 장자의 취향이 아니다. 뻔히 오해가 예상되는데도 불구하고 장자는 왜 ‘응제왕’이란 제목을 단 것일까?
대답은 ‘응제왕’ 안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다. 응제왕에는 ‘군인(君人)’ ‘성인(聖人)’ 등 공자와 맹자가 사용함 직한 용어를 그대로 쓰고 있다. 하지만 용법을 보면 금방 장자가 말하는 ‘제왕’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의인화된 천근(天根)이 역시 의인화된 무명인(無名人)에게 천하를 어떻게 다스리느냐고 묻자, 무명인은 물음 자체를 불쾌하게 여기고 대답하지 않았다. 거듭된 질문에 무명인은 마지못해 다음처럼 대답했다.
“마음을 담박한 상태로 노닐고, 기를 고요한 상태와 맞추어서 사물(사태)을 저절로 그러함에 따라가며 사적인 바람을 집어넣지 않는다면 온 세상이 다스려질 것이다.”
이렇게 해 천하를 다스릴 경우 제왕은 크나큰 공덕을 실현하게 된다.
“밝은 왕의 다스림이란 그 공적이 세상을 뒤덮을 정도지만 자신이 하지 않은 것으로 한다. 또 그 변화(생장)가 만사만물에 골고루 미치지만 백성들은 알지도, 믿지도 않는다.”
여기서 ‘제왕’은 어떤 특정 가치를 정하거나 제시하지 않는다. 사물과 일이 저절로 그렇게 바뀌도록 간섭하지도 않지만 좋은 결과는 쌓인다. 장자가 ‘천근’과 ‘무명인’을 의인화한 것과 마찬가지로 ‘제왕’과 ‘명왕’ 등의 용어는 ‘자연’의 또 다른 의인화에 불과했다. 따라서 제왕은 천지와 함께 우주(세계)의 질서를 창출하는 특정한 존재를 가리키지 않는다.
장자는 ‘성인’과 ‘제왕’처럼 유가의 지배자를 가리키는 용어만이 아니라 새로운 용어를 제시했다. 첫 편 ‘소요유’에서는 세 가지 인간 유형을 말한다.
“지인(경지에 이른 사람)은 자기가 없고 신인(신묘한 사람)은 공적이 없고 성인(거룩한 사람)은 이름이 없다고 한다.”
일단 세 유형은 맹자의 성인과 확연히 다르다. 맹자의 성인도 물론 고집을 피우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무기(無己·자기가 없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맹자의 성인은 진리를 소유하고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도록 만든다. 어찌 보면 세상의 중심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맹자의 성인은 ‘유기(有己)’라고 불러도 무방하다.
여기선 ‘무(無)’의 의미를 세심히 살펴야 한다. 자칫 무를 ‘아무것도 없다’는 뜻으로 읽어내면 장자의 취지와 어긋날 수 있다. ‘무’는 소유할 이유도 없고 특정한 말로 한정 지을 수도 없다.
장자는 지인과 신인 외에도 ‘진인(眞人)’이란 말을 즐겨 썼다. 아마 이 말만큼은 조어의 공적을 장자에게 돌려도 문제가 없다. 장자는 세계를 진짜와 가짜, 즉 진가(眞假)의 프레임으로 바라본 최초의 인물이다.
장자는 가짜가 진짜로 행세하고 이데올로기가 진실로 둔갑하고 허세가 실력으로 오인되는 상황에서 세상을 진가의 틀로 바라보라고 권했다.
그가 말하는 진인을 살펴보자.
“옛날의 진인은 삶을 기뻐할 줄 모르고 죽음을 미워할 줄도 몰랐다. 태어남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을 막지 않아서, 홀가분하게 저기로 가고 홀가분하게 여기로 올 뿐이다. 자신이 시작된 곳(때)을 잊지 않고, 자신이 끝나는 곳(때)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 생명을 받으면 그대로 기뻐하고, 잃으면 그대로 돌아간다. 마음(욕망)으로 도를 손상시키지 않고 인위적인 것으로 자연적인 것을 조장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런 사람을 진인이라고 한다.” (‘대종사’)
장자가 ‘참다운 사람’, 즉 진인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실제 사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람이 어떻게 삶을 기뻐하지 않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정이 없는’ 차가운 사람이 되면 세상사를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다. 특정한 관계에서 보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은 참으로 슬프기 그지없다. 반면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특정 생명이 소멸하는 사건일 뿐이다. 이렇게 되면 진인은 자연을 닮은 사람이지만, 맹자의 기준으로 보면 사람 같지 않은 사람이 되기도 한다.
장자는 이런 진인의 모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묘사했다. ‘대종사’를 보면 장자는 공자와 안연의 이야기를 빌려 들떠서 바삐 돌아다니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모든 걸 잊는다는 ‘좌망(坐忘)’을 말한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은 나아갈 가치를 정한 뒤 그것이 맞으면 함께하고 맞지 않으면 멀리한다. 아울러 사람은 자신을 스스로 정한 가치와 일치하도록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노력한다. 이런 노력이 지나치면 심리적으로 노이로제와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극단적으로 정신분열증에 빠지기도 한다. 이를 치유하기 위해 장자는 좌망을 제시했다.
“팔다리와 몸을 늘어뜨리고 눈과 귀의 작용을 물리치고 육체를 잊고 지식을 내버리고 대통(大通), 완전한 소통의 세계와 같아지는 것을 좌망이라고 합니다.”
기억과 노력을 중시하는 사람은 좌망이 환상으로 보일지 모른다. 장자는 ‘천지’에서 ‘상망(象罔·형상이 없다는 뜻)’을 통해 좌망이 환상이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황제(黃帝)가 여행하다가 현주(玄珠·검은 구슬, 道를 비유한 단어)를 잃어버렸다. 그는 그것을 찾기 위해 척척박사인 지(知), 눈이 아주 밝은 이주(離朱), 말솜씨가 뛰어난 끽후(喫詬)를 보냈지만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형상도 없고 멍청하기로 이름난 상망이 현주를 찾았다. 지 등은 모두 자신의 관점에서 현주를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상망은 모든 것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못 찾을까 초조해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먼저 찾을까 애달아하지도 않고 어떻게든 찾아야만 한다는 고집 또한 없었다. 이렇게 보면 상망이 현주를 찾은 것이 아니라 현주가 상망을 찾았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지식이나 밝은 눈, 말솜씨만으로는 도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더불어 인위적인 것으로는 자연의 이치인 도를 찾을 수 없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이 사례는 우리 삶에 바로 적용할 수도 있다. 서푼의 지식으로 모든 것을 아는 양 떠든다면 우리는 세상에 숨겨진 ‘현주’를 영원히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
장자 [Chuangtzu, 莊子]중국 사상가
장자 요약정보
태어난 때 | ? |
---|---|
죽 은 때 | ? |
소속 국가 | 중국 |
직 업 | 사상가 |
BC 4세기에 활동한 중국 도가 초기의 가장 중요한 사상가.
개요
본명은 장주(莊周). 그가 쓴 〈장자〉는 도가의 시조인 노자가 쓴 것으로 알려진 〈도덕경 道德經〉보다 더 분명하며 이해하기 쉽다. 장자의 사상은 중국불교의 발전에도 영향을 주었으며, 중국의 산수화와 시가(詩歌)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기록으로 본 장자의 생애
후대의 학자들이 가장 뛰어난 장자 연구가로 평가한 서진(西晉)의 곽상(郭象 : ?~312)은 장자의 저작에 처음으로 주석을 달았고, 장자의 위치를 도가사상의 원류로 끌어올렸다. 불교, 특히 선(禪) 불교의 학자들도 장자의 책을 많이 인용했다. 이러한 장자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 한대(漢代)의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 ?~BC 85)은 그의 〈사기〉 열전(列傳)에서 장자의 생애에 대해 아주 간략하게 언급하고 있다. 열전에 의하면 장자는 전국시대 송(宋)나라의 몽(蒙 : 지금의 허난 성[河南省] 상추 현[商邱縣])에서 태어났고, 이름은 주(周)이며, 고향에서 칠원(漆園)의 하급 관리를 지냈다. 그는 초(楚)나라 위왕(威王 : ?~BC 327) 시대에 활동했으므로, 공자에 버금가는 성인으로 존경받는 유교사상가인 맹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다. 열전에 의하면 장자의 가르침은 주로 노자의 말을 인용한 것이지만 장자가 다룬 주제가 훨씬 광범위하다고 한다. 장자는 자신의 문학적·철학의 천부적재능을 발휘하여 유가와 묵가(墨家 : 謙愛說을 주장한 묵자의 추종자들)의 가르침을 반박했다. 또한 유가의 가르침을 반박한 어부(漁父)·도척(盜)·거협(胠篋) 등을 썼으며, 상상으로 지어낸 〈외루허 畏累虛〉·〈항상자 亢桑子〉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다.
장자는 자신의 이름을 딴 저서 〈장자〉(〈남화진경 南華眞經〉이라고도 함)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장자〉는 총 33편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4세기에 읽히던 〈장자〉는 53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는 증거도 있다. 그 이후 수많은 판본이 나왔으며 〈장자〉에 대한 다양한 해석 때문에 본래의 내용이 불분명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장자〉 내편(內篇 : 1~7권)의 7편은 대부분 장자 자신이 지은 것이 분명하지만, 외편(外篇 : 8~22편)과 잡편(雜篇 : 23~33편)은 그 자신이 쓴 것도 일부 있는 듯하나 대부분 위작(僞作)으로 보인다. 그의 인품에 대해서는 〈장자〉의 내편과 외편에 나오는 일화들을 통해 잘 알 수 있다.
일화로 본 장자의 인품
장자는 이 일화 속에서 개인의 안락함이나 대중의 존경 따위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은, 예측불허의 괴팍한 성인으로 나타나 있다. 그의 의복은 거칠고 남루했으며 신발은 떨어져나가지 않게 끈으로 발에 묶어놓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비천하거나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친한 친구인 혜시(惠施)가 부인의 상(喪)을 당한 장자를 조문하러 와서 보니, 장자는 돗자리에 앉아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시가 장자에게 평생을 같이 살고 아이까지 낳은 아내의 죽음을 당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따지자,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아내가 죽었을 때 내가 왜 슬프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아내에게는 애당초 생명도 형체도 기(氣)도 없었다. 유(有)와 무(無)의 사이에서 기가 생겨났고, 기가 변형되어 형체가 되었으며, 형체가 다시 생명으로 모양을 바꾸었다. 이제 삶이 변하여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춘하추동의 4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아내는 지금 우주 안에 잠들어 있다. 내가 슬퍼하고 운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모른다는 것과 같다. 그래서 나는 슬퍼하기를 멈췄다."
장자의 임종에 즈음하여 제자들이 그의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려고 의논하고 있었다. 이것을 들은 장자는 "나는 천지로 관(棺)을 삼고 일월(日月)로 연벽(連璧)을, 성신(星辰)으로 구슬을 삼으며 만물이 조상객(弔喪客)이니 모든 것이 다 구비되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고 말하면서 그 의논을 즉시 중단하게 했다. 이에 제자들은 깜짝 놀라 매장을 소홀히 하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장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와 솔개의 밥이 되고, 땅속에 있으면 땅속의 벌레와 개미의 밥이 된다. 까마귀와 솔개의 밥을 빼앗아 땅속의 벌레와 개미에게 준다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위와 같은 장자의 기괴한 언동은 그의 숙명론에 대한 깨달음과 직결되어 있다. 장자에 의하면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 즉 도(道)로 통한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장자의 도관(道觀)
장자는 말로 설명하거나 배울 수 있는 도는 진정한 도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도는 시작도 끝도 없고 한계나 경계도 없다. 인생은 도의 영원한 변형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며, 도 안에서는 좋은 것, 나쁜 것, 선한 것, 악한 것이 없다. 사물은 저절로 흘러가도록 내버려두어야 하며 사람들은 이 상태가 저 상태보다 낫다는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덕이 있는 사람은 환경, 개인적인 애착, 인습, 세상을 낫게 만들려는 욕망 등의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 장자는 관리생활의 번잡함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초나라의 재상직을 거절했다. 그의 인식에 대한 철저한 상대성은 〈장자〉에 나오는 유명한 '나비의 꿈'(胡蝶之夢)에 잘 나타나 있다.
"언젠가 나 장주는 나비가 되어 즐거웠던 꿈을 꾸었다. 나 자신이 매우 즐거웠음을 알았지만, 내가 장주였던 것을 몰랐다. 갑자기 깨고 나니 나는 분명희 장주였다. 그가 나비였던 꿈을 꾼 장주였는지 그것이 장주였던 꿈을 꾼 나비였는지 나는 모른다. 장주와 나비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음은 틀림없다. 이것을 일컬어 사물의 변환이라 한다. "
〈장자〉에서 모든 경험이나 지각의 상대성은 '만물의 통일성'(萬物齊同)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도가 어디에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장자는 도가 없는 곳이 없다고 대답했다. 더 구체적인 설명을 요청받자 장자는 개구리와 개미, 또는 그보다 더 비천한 풀이나 기와 조각, 더 나아가서 오줌이나 똥에도 도가 깃들어 있다고 단정했다. 도가 어디에나 있다는 단정은 그뒤에 중국불교에서도 나타난다. 그들은 이와 유사한 예를 들어 아무리 미천한 것에도 불성(佛性)이 깃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장자야말로 무애자재(無碍自在)의 도를 깨친 위대한 사상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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