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女)의 기준

왕소군과 춘래 불사춘

일장검 2022. 2. 25. 19:51

 
 
"봄은 왔으나, 봄 같이 않구나"라는  
당나라 시인 동방규가 썼다는,
왕소군에 얽흰 <춘래불사춘>이란 말이 떠오
릅니다 
 
왕소군은,
월나라 때ㅡ서시
한나라 삼국지에 나오는ㅡ초선
한나라 때ㅡ왕소군
당나라 때ㅡ양귀비와 더불어서 
 
중국 4대 미인으로 손꼽히죠
(단,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은 가상의 인물로
 봅니다) 
 
 
 
<왕소군과 춘래불사춘> 
 
 
왕소군은 본래 중국 한나라 11대 황제인 원제의 궁녀였다. 
 
*한나라에 관하여 :
-유방이 항우와 4년여간 싸워 이긴후 세운
  나라
-존재 : BC206~220
-한나라 7대 황제 한무제 때 우리나라 고조
 선을 멸망시키고 BC108년에 한사군을 설
 치함
-이 한나라는 15대 황제 때 신하이던 왕망이
 라는 사람이 정권을 잡고 "신"이라는 나라를
 세웠다가 유수라는 사람이 다시 한나라를 세
 웠는데,왕망 이전을 전한 이후를 후한이라고
 부른다
-황제 29명(전한 15명,후한14명)
-이 한나라 후한  말기에 나라가 어지러워지
  자 군벌들이 저마다 독립하였는데 이때 조조
 ,유방,손권의 삼국시대가(220년~280년) 60
  여년간 있었다 
 
 
 
왕소군은
ㅡ월나라 때 서시, 
ㅡ당나라 때 양귀비, 
ㅡ삼국지 초선( 또는 항우 여자였던 우희) 
 
와 함께 고대 중국 4대 미녀들 중 1명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왕소군(기원전 1세기)은 흉노의 호한야 선우
와 그의 아들 복주류약제 선우의 연지(처)로 아버지와 아들의 처가 되었다 
 
《서경잡기》에 따르면, 북방의 흉노족이 자주 한나라의 변방을 침략 했다 
 
어느 해 흉노의 호한야 선우 (왕)가 한나라의 후궁중  한명을 첩으로 달라고 떼를 썼다 
 
한나라 11대 황제인 원제는 흉노에게 보내는 여성으로 후궁 중 가장 추한 여성으로 선택하
기 위해 초상화에 그려진 가장 보기 흉한 후궁
을 선택한 것이다.
 
초상화를 그리던 장인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
던, 왕소군은 가장보기 흉하게 그려져 있었기 때문에 왕소군이 선택된 것이다. 
 
황제에게 이별을 알리기 위해 마련된 자리에
서,원제는 왕소군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겼
지만,어쩔 수 없이 보내고 말았고 격노한 원제
는 화상의 목을 쳤다고 한다. 
 
 
왕소군은 흉노 호한야 선우의 첩이 된후 그의 장남을 낳았다.
 
흉노족 선우(왕)의 첩이된 왕소군은 호한야 선우가 사망하자,당시흉노의 관습대로
아들 복주류약제 선우의 처가 되어 둘째 딸을 낳았다고 한다.
다고 한다. 
 
이후 왕소군은 고향으로 되돌아 오지 못한채  72세가 되던 해에 병을 얻어 돌무덤에 안장되
었는데,
사람들은 그 무덤을 일컬어 소군묘 혹은 청총
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당나라의 시인 동방규는 
 
황량한 초원지대가 대부분이었던 흉노의 땅에
서,다시는 돌아갈 수없는 고향땅을 그리며 살
았을 왕소군을 생각하면서, 
 
"소군원"이라는 시를 썼는데... 
 
 싯구절 중 
 
이 땅에 꽃과 풀이 없으니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이 시구에서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구나"
라고 했는데 
 
여기에서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이라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흉노 땅의 봄을 맞이했음에도 고향 땅의 봄같
지 않아 더욱 사무치게 고향이 그립다는 그녀
의 애절한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지금도 이 시구인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은
그리움의 인용구로 널리 쓰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