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 9, 수능 국어영역의 중요한 특징은 융합과 장지문이었다. 평론과 소설이 함께 출제되고 비문학은 2800자가 넘는 지문이 출제되기도 하였다. 이런 와중에 소리 소문없이 사라진 유형이 주로 고전소설 속에 등장하던 고사성어(사자성어) 문제이다. 사실 그동안 사자성어와 관련해서 많은 논쟁이 있었다. 그 논쟁의 핵심은 사자성어가 반드시 암기가 필요한 부분이며 이것이 국어영역 시험의 본래 취지인 비판 추론 능력과는 거리가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또 작년 학계에서 꾸준히 논쟁이된 한글전용, 한자혼용 논란과 맞물리면서 자연스레 고사성어 문제가 출제에서 배제 되었고 올해 6,9, 수능에서도 이런 기조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자성어는 여전히 국어 내신, 특히 문학에서는 반드시 평가되는 내용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한자성어와 속담이 갖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는 점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수능에도 나오지 않을 사자성어와 속담 왜? 공부해야할까?
한자성어와 속담 교육의 필요성. -사고력 도우미, 한자성어와 속담.
한자성어와 속담은 삶의 지혜를 담고 있는 관용어이다. 공자의 과유불급, 온고지신, 문일지십이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 낫 놓고 기억 자 모른다. 등 다양한 사자성어와 속담을 익히며 우리는 일상생활의 지혜와 보편적 삶의 이치에 다가서게 된다.
이런 맥락에서 사자성어와 속담은 국어 교육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그런데 작년 수능부터 이 사자성어, 속담과 관련된 문제들이 시험 출제에 배제되면서 앞으로 사자성어나 속담의 비중이 국어 교육에서 다소 축소 되어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는 올해 논란이 되었던 한자 혼용과 한글 전용에 대한 이견 대립과도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교육도 변화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우리 어휘의 70% 정도가 한자어인 상황에서 한자 교육의 축소나 한글 전용에 대한 생각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신라 경덕왕 이후 우리 말 어휘와 중국 어휘의 경쟁에서 우리 말 어휘는 조금씩 그 자리를 내 주었다. 가령, 지명인 빛고을이 광주로 가마골이 부산으로 변화한 것처럼 명사를 중심으로 다수의 어휘가 한자로 변화하였으며 그나마 생존력이 강한 동사, 형용사의 경우에도 바뀌다, 먹다, 자다 등 순 우리말 어휘 외에 형성하다, 변화하다. 수출하다처럼 우리말의 접사 ‘하다’에 한자를 붙여 만든 어휘가 더 많이 사용되고 또 고등 지식으로 갈수록 이런 어휘로 기록되고 교육되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한자에 대한 기본 교육은 필요하다.
아 무튼, 이런 이유 말고도 사실 사자성어나 또 우리말 속담이 갖는 또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들이 연역적 사고와 귀납적 사고를 아이들에게 교육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텍스트라는 점이다.
먼저 속담은 훌륭한 귀납 사고의 도구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 ‘낫 놓고 기역 자 모른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 처럼 우리말 속담의 중요한 특징은 구체성이다. 대부분이 속담이 아주 구체적이고 특별한 상황을 서술하고 있는데 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귀납적 사고가 필요하다. 즉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상황이 보편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 낫 놓고 기역 자도 모르는 구체적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생각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귀납적 사고력은 발전한다. 또 이런 속담의 구체성 덕분에 소 자리에 말을 외양간 자리에 마구간을 대응시키면서 ‘유추’ 사고력을 키워 나갈 수 있다. 낫 놓고 기역 자 모른다는 오리 놓고 숫자 2 모른다. 같은 표현으로 바꿔볼 수 있을 것이다.(좀 무린가?) 이는 귀납적 사고력을 향상시키는(구체적인 상황을 보편화해서 이해하는) 소설의 이해와도 같은 맥락에 있다.
중국 문화와 한국 문화의 차이처럼 사자성어는 속담과는 다소 상반된 성격이 있다. 다음 이야기를 먼저 살펴보자.
" 위나라 제후 무자가 평소에 아들에게 이르기를, 자기가 죽거든 서모를 개가시키라고 일렀다. 그런데 막상 죽음에 임박해서는 서모를 순장시키라고 했다. 그러나 아들은 평소에 했던 아버지의 말을 따라 서모를 개가시켰다. 후에 아들이 전쟁에 나가 싸우다가 쫓기게 되었는데, 서모 아버지의 넋이 적군의 앞길에 풀을 맞잡아 매어 걸려 넘어지게 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바탕으로 죽어서도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의 결초보은이 탄생하였다."
한자성어는 고사 성어라고도 하는데 이유는 대부분 이것이 만들어진 유래담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자성어는 구체적인 이야기를 보편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우리 속담보다는 보편적이며 다소 막연한 것들이 많다.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배운다. 하나를 들어 열을 안다 처럼 대부분 우리 속담에 비해 보편적이고 막연하다. 이런 사자성어의 특징은 속담과 상반되게 연역적 사고를 교육하는 훌륭한 도구가 된다. 즉 과유불급이라는 개념 안에서 자기 스스로 지나침이 오히려 좋지 못한 결과를 낳게 한 경험을 떠올려 보거나 온고지신을 통해 옛 것을 잘 익힌 것이 새로운 것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었던 경험을 떠올리게 하면서 아이들의 사고력은 자연스럽게 발전한다. 이처럼 속담과 사자성어는 조상들의 삶의 지혜 배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훌륭한 문화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