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한문 고사성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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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포자기(自暴自棄) 自(스스로 자) 暴(사나울 포) 棄(버릴 기)
[준말] 자포(自暴), 포기(暴棄), 자기(自棄). (출전)《孟子》〈離婁篇〉
스스로 자신을 학대하고 돌보지 아니함.
전국 시대를 살다간 아성(亞聖) 맹자(孟子)는 '자포''자기'에 대해《맹자》〈이루편(離婁篇)〉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포(自暴:스스로를 학대)하는 사람과는 더불어 대화를 나눌 수가 없다. 자기(自棄:스스로를 버림)하는 사람과도 더불어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입만 열면 예의 도덕을 헐뜯는 것을 자포라고 한다. 한편 도덕의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인(仁)이나 의(義)라는 것은 자기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기(自棄)라고 한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원래 선(善)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있어서 도덕의 근본 이념인 '인'은 편안한 집[安 ]과 같은 것이며, 올바른 길인 '의'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정로(正路:正道)이다. 편안한 집을 비운 채 들어가 살려 하지 않으며 올바른 길을 버린 채 그 길을 걸으려 하지 않는 것은 실로 개탄할 일이로다."
[주] '자포자기'란 말은 맹자가 어느 때 누구에게 한 말인지 모르나 오늘날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을 학대(虐待)하고 돌보지 않는다'는 뜻으로 흔히 쓰이고 있음.
학교 한문 고사성어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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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다른 타) 山(뫼 산) 之(어조사 지) 石(돌 석)
(출전) 시경 소아 학명편(詩經 小雅 鶴鳴篇)
「다른 산의 돌로 옥(玉)을 간다」 「다른 산에서 나는 예사 돌이라도 이쪽 산에서 나는 옥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남의 하찮은 언행을 거울삼아 제 품성을 높인다는 교훈을 담고 있다. 비슷한 말로 절차탁마(切磋琢磨)가 있다.
먼 못가에 학이 우니/그 소리 하늘 높이 울려 퍼지고/
물가로 나와 노니는 물고기/때로는 연못 깊이 숨기도 하네.
즐거울사 저기 저 동산속에는/한그루 박달나무 솟아있어도/
닥나무만 그 밑에 자라난다고./
다른 산의 못생긴 돌맹이라도/숫돌삼아 옥을 갈 수가 있네
(타산지석 가이공옥. 他山之石 可以攻玉)」
문민정부의 시행착오는 새 정부에게 「타산지석」이 될 수 있다. 5년동안 나라 전체를 바꿔놓겠다는 대통령의 과욕은 나라 일을 오히려 그르치고 말았다. 금융실명제로 시작된 개혁은 어느것 하나 변변찮게 뜯어고치지 못하고 「제2의 국치」라는 IMF체제로 마감됐다.
새 대통령은 단번에 모든 것을 해치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
학교 한문 고사성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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創(비롯할 시작할 창) 業(업 업) 守(지킬 수) 成(이룰 성)
[원말] 이창업 난수성(易創業難守成).
(출전)《唐書》〈房玄齡專〉,《貞觀政要》〈君道篇〉,《資治通鑑》
일을 시작하기는 쉬우나 이룬 것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말.
수(隋:581∼619)나라 말의 혼란기에 이세민(李世民)은 아버지인 이연(李淵)과 함께 군사를 일으켜 관중(關中)을 장악했다. 이듬해(618) 2세 양제(煬帝)가 암살되자 이세민은 양제의 손자인 3세 공제(恭帝)를 폐하고 당(唐:618∼907) 나라를 '창업'했다.
626년 고조(高祖) 이연에 이어 제위에 오른 2세 태종(太宗) 이세민은 우선 사치를 경계하고, 천하 통일을 완수하고, 외정(外征)을 통해 국토를 넓히고, 제도적으로 민생 안정을 꾀하고, 널리 인재를 등용하고, 학문 문화 창달에 힘씀으로써 후세 군왕이 치세(治世)의 본보기로 삼는 성세(盛世)를 이룩했다. 이 성세를 일컬어 '정관의 치[貞觀之治:태종 정관 연간(627∼649)의 치세]'라고 한다. '정관의 치'가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은 결단력이 뛰어난 좌복야(左僕射) 두여회(杜如晦), 기획력이 빼어난 우복야(右僕射) 방현령(房玄齡), 강직한 대부(大夫) 위징(魏徵) 등과 같은 많은 현신들이 선정(善政)에 힘쓰는 태종을 잘 보필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태종은 이들 현신이 모인 자리에 이런 질문을 했다. "창업과 수성은 어느 쪽이 어렵소?"
방현령이 대답했다. "창업은 우후 죽순(雨後竹筍)처럼 일어난 군웅 가운데 최후의 승리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인 만큼, 창업이 어려운 줄로 아나이다."
그러나 위징의 대답은 달랐다. "예로부터 임금의 자리는 간난(艱難) 속에서 어렵게 얻어, 안일(安逸) 속에서 쉽게 잃는 법이옵니다. 그런 만큼 수성이 어려운 것으로 사료되옵니다."그러자 태종이 말했다. "방공(房公)은 짐과 더불어 천하를 얻고, 구사 일생(九死一生)으로 살아났소. 그래서 창업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리고 위공(魏公)은 짐과 함께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항상 부귀에서 싹트는 교사(驕奢:교만하고 사치함)와 방심에서 오는 화란(禍亂)을 두려워하고 있소. 그래서 수성이 어렵다고 말한 것이오. 그러나 이제 창업의 어려움은 끝났소. 그래서 짐은 앞으로 제공(諸公)과 함께 수성에 힘쓸까 하오."
寸(마디 촌) 草(풀 초) 春(봄 춘) 暉(빛 휘)
한포기 풀과 봄날의 햇볕」 자그마한 한포기 풀이 봄볕의 은혜에 보답하기 힘들다. 자식이 부모의 은덕에 보답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당(唐)나라 시인 맹교(孟郊. 서기 751년~814년)가 지은 시 「유자음(游子吟)」에 나온다. 맹교는 46세에 뒤늦게 진사에 급제한 뒤 큰 벼슬에 오르지 못했다. 힘든 인생살이를 반영하듯 그의 시는 가난한 백성들에 대한 동정심이 한껏 배어있다.
맹교는 대표작 「유자음」에서 자애로운 어머니가 타향에 외출하는 아들의 옷을 정성껏 짓는 모습을 통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뜨거운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자모수중선, 유자신상의/임행밀밀봉, 의공지지귀/수언촌초심, 보득삼춘휘(慈母手中線, 游子身上衣/臨行密密縫, 意恐遲遲歸/誰言寸草心, 報得三春暉)」. 마지막 두구절에서 시인은 아들의 심정을 한포기 풀, 어머니 마음을 봄날의 햇볕에 비유했다. 「자그마한 풀포기 하나 그를 길러준 봄날의 햇볕에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라는 뜻이다.
어버이날이다. 어버이에 대한 은혜를 늘 마음에 담고 있으면서도 선뜻 말로 하기는 어렵다. 멀리 계시는 부모님께 마음의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다.
학교 한문 고사성어 (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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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광기>166권에 <本事詩>
깨진 거울이란 뜻으로, 둥글던 거울이 깨짐으로써 한쪽이 떨어져 깨어지거나 금이 가서 옛날처럼 완전한 못브과 밝은 거울의 역할을 할 수 없거나 부부 사이의 금슬이 좋지 안아 이별하게 되는 경우를 가리키는 말(太平廣記)
서기 589년 정월에, 南朝의 최후의 왕인 조진이 멸망했을 때, 태사자인 서덕언은 간신히 살아남을 수가 있었지만, 그의 아내가 隋나라 병사에게 사로잡혀 가서 생이별이 되고 말았다. 그의 아내는 남조의 마지막 황제가 된 陳나라의 진숙보의 누님으로, 낙창공주에 봉해져 있었다. 멸망하는 그날까지 술과 여자에게 빠져 있던 황제의 궁중에는 수많은 미인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그 여자들 가운데서도 文才와 얼굴모습이 가장 뛰어난 존재였다. 나라가 망하고 보니, 여자들은 점령군의 거친 남자들에게 짓밟힘을 당하고, 얼굴이 아름다운 여자들은 사로잡혀 장교들의 희롱물이 되고, 황녀와 왕비들은 도읍으로 보내져서 권력자들의 규방에 제공되었다. 그것은 나라가 망한 여자들에게 있어, 어느 세상에서나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서덕언은 수나라 대군이 양자강 북쪽 기슭에 도착했을 때, 만일의 경우를 생각하여 아내를 불렀다.
"이곳은 언제 적군이 공격해올지 예측할 수 없는 접전지역이오. 당신의 미모와 재주로 보건대, 일단 나라가 멸망하면 당신은 반 드시 적군의 그럴듯한 자의 진으로 보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 면 살아서 두 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인연이 있어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오. 그때를 위하여....."
그는 옆에 있던 한 장의 거울을 둘로 깨뜨리자, 한쪽을 아내에게 건네 주었다.
"이것을 소중히 가지고 있어 주요. 그리고 정월 보름날에 도읍의 시장에서 팔아 주오. 정월 보름날에는 반드시 그래야 해. 만일 살아 남을 수 있다면, 나는 그 날에는 반드시 도읍으로 찾아갈 것이오."
두 사람은 깨어진 거울의 조각을, 각각 품안에 깊이 감추었다.
<태평광기>166권에 <本事詩>에서 다시 기록한 양소의 이야기이다. <태평광기>는 이것을 양소의 의협심을 비유한 얘기로서 <義氣>의 항목에 분류하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서덕언 부부의 재회를 말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이 이야기에서 살아서 이별한 부부가 다시 만나는 것은 <破鏡重國
이라고 하게 되었다. 또 부부의 이혼을 가리켜 <破鏡>이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교 한문 고사성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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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를 학) 轍(수레바퀴 자국 철) (붕어 부) 魚(고기 어)
[동의어] 철부지급 학철지부, 학철부어.
[유사어] 우제지어(牛蹄之魚). (출전) ≪莊子≫ 〈外物篇〉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있는 붕어란 뜻으로, 매우 위급한 경우에 처했거나 몹시 고단하고 옹색함의 비유.
전국 시대,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했던 장자(莊子)의 이야기이다. 그는 왕후(王侯)에게 무릎을 굽혀 안정된 생활을 하기보다는 어느 누구에게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그는 끼니조차 잇기가 어려웠다. 어느 날 장자는 굶다 못해 감하후(監河侯)를 찾아가 약간의 식대를 꾸어 달라고 했다. 그러자 감하후는 친구의 부탁을 딱 잘라 거절할 수가 없어 이렇게 핑계를 댔다.
"빌려주지. 2,3일만 있으면 식읍(食邑)에서 세금이 올라오는데 그때 삼백 금(三百金)쯤 융통해 줄 테니 기다리게."
당장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 2,3일 뒤에 거금(巨金) 삼백 금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체면 불고하고 찾아온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난 장자는 내뱉듯이 말했다.
"고맙군. 하지만 그땐 아무 소용없네."
그리고 이어 장자 특유의 비아냥조(調)로 이렇게 부연했다.
"내가 여기 오느라고 걷고 있는데 누가 나를 부르지 않겠나.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 붕어가 한 마리 있더군[ 轍 魚].''왜 불렀느냐'고 묻자 붕어는 '당장 말라죽을 지경이니 물 몇 잔만 떠다가 살려 달라'는 겨야. 그래서 나는 귀찮은 나머지 이렇게 말해 주었지. '그래. 나는 2,3일 안으로 남쪽 오(吳)나라와 월(越)나라로 유세를 떠나는데 가는 길에 서강(西江)의 맑은 물을 잔뜩 길어다 줄 테니 그 때까지 기다리라'고. 그랬더니 붕어는 화가 나서 '나는 지금 물 몇 잔만 있으면 살 수 있는데 당신이 기다리라고 하니 이젠 틀렸소. 나중에 건어물전(乾魚物廛)으로 내 시체나 찾으러 와 달라'고 하더니 그만 눈을 감고 말더군. 자, 그럼 실례했네."
[주] ' '이란 글자는 원래 '학'자인데 이 경우 '확'으로 읽어 '확철부어'라고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