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主君을 생각하는 忠情 넘치는 出 師 表
중원을 회복하여 한왕조를 재흥한다"는 선제(先帝)유비의 뜻을
실현하는것이 승상 제갈공명의 과제였다.그는이 과제를 달성하
기 위해 몇해나 걸려 만단의 준비를갖추고 있었다.남방의 반란
이 평정되고 국내 정국도 안정 되었으므로 촉나라의 체제는 굳
어졌다.한편 위나라에서는 황초(黃初)7년(226)경.조비문제가40
세 젊은 나이로 죽고 태자인 조예(曺叡) 자는원중(元仲)가 뒤를
이어 명제(明帝)라 칭하고 있었다.톱의교체로 위나라에는 아직
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았으며 더구나동부전선에서는 오군과 작
은 충돌을 되풀이하고 있었다.오나라와제휴해서 위나라를 협공
하는 절호의 기회가 도래한 것이었다.이제 드디어 북정(北征)으
로 출발할 국면이 되었지만 제갈공명에게 있어서 유일한 걱정은
젊고 더구나 범상(凡常)한 새 황제 유선이 후방에남아 조정의 정
사를 잘 처리할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촉나라 건흥(建興)5년
(227).제갈공명은 대군을 이끌고 북상하여 한중(漢中)으로 진주
했다.출발에 앞서 그는 상주문(上奏文)을 제출했다.
신(臣)양(襄)말씀드립니다.선제가 창업을 시작하여 아직반도
이루지 못했는데 중도에 돌아 가셧습니다.지금 천하가 삼분
하여 익주(益州)가 피폐했습니다.참으로 위급 존망지추(危急
存亡之秋)입니다. 중략. 신은 본시 평민으로 남양(南陽)에서
몸소 농사를 지으며.적어도 성명(性命)으로 난세에 보존하여
명성이 널리 알려지는 것을 제후(諸侯)에게 바라지 않았습니
다.선제는 신의비비(卑備)함을 생각하지않고 몸소 귀한 몸을
굽히고 신을 초려(草廬)에 삼고(三顧)하시고. 당세(當世)의 일
을 신에게 상의하셨습니다.이에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위
하여 치구(馳驅)의 노고를 다할것을 승락하였읍니다. 중략.
이래 21년이 지났습니다.선제는 신의 근신(謹愼)함을 아시고
돌아가실때 신에게 큰일을 부탁하셨습니다. 중략. 신은 은혜
를 받고 감격해 마지 않으며 지금 멀리 떠남에 있어 표(表)를
씀에 있어 눈물이 흘러 말할바를 모르 겠습니다.
이것이 역사적으로 유명한 "출사표"다. 유비와의 만남에서부
터 백제성에서의 유촉(遺囑)을 받은 것을 적고.자기로서는 선
제의 신뢰와 지우(知遇)에 보답하는 것을 생애의 임무로 삼고
있다는 심정을 토로하는 동시에 톱으로서의 마음가짐과 국내
의 인사.행정.군사에 걸친 자세한 의견을 구신했다.제갈공명
으로서는 살아 돌아오기를 기약하기 어려운 원정이라고 생각
했던 모양이다.그런만큼 암우(暗愚)한 유선을 돌보는 성심이
자연히 드러나있어 눈물 없이는 읽을수 없는주옥(珠玉)의 명
문이다.